◇ 사람이 길든 대로 마음도 몸도 그대로 해야 편하다. 체질이 되어서, 길이 들어서다. 길든 대로 체질에 배고, 익힌 대로 편한 것이다.

하나님을 안 믿고 사는 자는 그 길이 들어서 그것이 편한 것이다. 후에 영과 혼이 지옥에 가서 고생하든지 말든지 생각 안 하고 살기에 편한 것만 생각한다.

그러하기에 ‘편하고 안 편한 것은 길든 대로’다.

- 일에 길든 자는 일하는 것이 그냥 노는 것보다 편하다고 하고
- 운동하는 자는 산을 타고 등산 운동을 하는 것이 편하다고 하고
- 노는 자는 운동 안 하고 쉬는 것이 편하다고 운동을 거의 안 한다.

사람은 체질에 길이 드는 대로 그것을 할 때 편한 것이다.

- 음식도 자기 체질이 길이 든 대로
그것을 먹어야 기쁘고, 체질에 맞고 편하다고 좋아하나니

한 사람이 좋아하는 대로 표준 할 수가 없는 것이다. 모든 것은 사람을 기준으로 하여 표준 하지 않고 의를 표준하고 행한 것을 공의로 보느니라. 그러므로 고생되어도 의를 행하기다.

- 새벽에 일찍 일어나서 기도하는 자들은 그것을 해야 편하다. 새벽에 기도를 안 하는 자들은 “하면 힘들다.”고 한다. 이는 체질이 안 돼서다.

◇ 자기 육체가 길든 대로 살아가는 것이 편하다. 그러나 편한 것만 생각 말고
근본은 미래의 영과 혼을 위해서 살아야 한다. 자기 편한 대로만 살면
영원토록 영과 혼이 고통을 받기 때문에
우선 편한 대로 살아가는 자 사망이 덮친다.


미래 세상, 영의 세계만 없으면
육신 편한 대로 사는 것이 지혜다.
그러나 영의 세계가 반드시 있으니 영을 위해 살아야 된다.


또한 그냥 있는 대로, 되는 대로 사는 것이 아니라 ‘육계 세상만이라도 잘 따져 보기’ 바란다. 그러면 미래, 앞날을 위해서 고생돼도 의를 행하며 열심히 좌절 말고 살아야 함을 알게 된다.

영원하신 하나님의 뜻에 맞춰 길이 들어 살아야 한다. 그래야만 육도 영도 삶이 쉽고, 구원받고 영원토록 잘 된다.

하나님의 뜻에 벗어나서 하나님을 안 믿고
육신의 삶에만 체질 되고 길들어 편안하게 살아도 육신 일생은 잠깐의 기간이다. 영원한 기간에 비해 너무나도 짧다.

구원을 못 받고 사는 삶은 부귀영화를 누리어도 육신만 잠깐 편안했지, 영과 혼은 영원토록 고통과 사망이다.

고로 의를 행하며 하나님 뜻을 위해 사는 삶에 길을 들이고 마음도 삶도 길을 들여 살아서 영원한 천국으로 가야 하나니 미련없이 행하자.



◇ 예수님이 선생 어렸을 때 “좋은 것을 길들이고 습관 들여 체질을 만들어라. 그렇게 해 놓아야 행하기 쉽다.
나쁜 것 길들이면 해야 기쁘고 좋으니 하게 된다. 새벽에도 일찍 일어나는 습관을 들이고 기도 습관 들여 놓아야 신앙생활 하기 쉽다.” 하셨다.

그래서 어릴 때부터 힘들어도 예수님의 말씀대로 성경대로 사는 것을 습관 들이고 길을 들였다. 성경 읽는 것 길들이고 설교할 때 글 쓰는 것 길들였다. 그리고 평소와 새벽에 기도하는 것 길들이고
기도를 오래 하는 것도 길을 들였다.
그랬더니 지금은 아예 체질이 되었다.

아무리 강한 몸이고 건강하여도
길을 안 들여 놓고 습관 안 들여 놓으면
새벽에 일찍 일어나지도 못하고 기도도 못 한다.

◇ 의의 생활도 그러하다. 각종 의의 삶에 길을 들여 체질을 변화시켜 놓아야 보람 있게 산다.

버릇은 제2의 천성이다.
좋은 것은 습관 들여
놓아야 하기 쉽다.

운동이나 각종 것, 자기 습관이 들면
비가 오고 눈이 와도 기뻐하며 뛰며 행한다.

선생도 20년 동안 기도 생활, 길을 들여 놓아서 불가능한 상황에서도 보다 쉽게 했다.

습관을 들여 놓지 않으면 마음도 몸도 체질 되어 하기가 정말 힘들고 하기 싫다. 좋은 것인데도 체질이 안 되니, 하기 싫어 성공 길을 벗어나서 편하게 게으르게 산다.
결국은 앞날에 가서 인생 망하고 고통 세계에서 살게 된다.

◇ 안 해 버릇하는 자는
- 체질이 안 받아들여 좋은 음식도 못 먹는다.
- 환경 좋은 곳도 별로라고 하며 마음도 체질도 안 맞아 못 산다.

고로 마음도 체질도 좋은 것으로 길들여 놓아야 쉽게 한다.



◇ 크게 하는 것, 길들여 놓아라. 그렇지 않으면 좋은 것도 안 좋아하고 작은 옹달샘 삶을 산다.

좋은 것에 체질이 안 된 자는 집도 토끼집 같은 작고 허름한 데서 사는 것이 좋다고 산다. “정원도 크면 부담된다. 별로다.
그냥 익숙한 대로 작게 살기 원한다.”고 한다.

곧 무너질 것 같은 초가집에 살면서 그 집에만 마음을 길들여 놓았기에 집을 때려 부수고 다시 크게 짓자고 하면 옛날 노인들같이 막 화를 내고 “미쳤냐?” 한다.

◇ 그래서 선생도 옛날 선생이 태어난 오래된 초가집을 때려 부수고 다시 짓자고 하다가 아버지께 혼났다.

그 초가집에서 계속 살 때 예수님께서 “때려 부수고 새집 짓자.” 하셨다. 그래서 알겠다고 대답하고 아버지가 새집 짓는 것을 반대하니 ‘어떻게 할까.’ 하다가 방법을 달리해 보았다.

‘아버지와 어머니가 밭에 가신 사이 무너뜨려 보자.’ 하고서 동생들과 함께 살던 초가집을 발로 차고 밀어붙이니
그 자리에서 순간 집이 무너졌다. 그렇게도 오래되고 약한 집이었다.

언제 무너질지 모르는 집에서 조금만 더 그 집에 살았으면 우리 식구는 죽을 뻔했다.
예수님은 “속이 시원하다.” 하시며 좋아하셨다.

잘못된 것에 습관 든 자들은 습관 든 대로 다 살아간다.

선생도 처음에는 그러했다. 지금처럼 월명동에 대한 하나님의 구상을 못 받았을 때였다. 10대 때 내 나름대로 계획했었다.
겨우 집이나 하나 새로 짓고 좋은 환경 만들고 살려고 계획했다.

그렇게 했으면, 했어도 산새같이 숲속에 작은 새집 짓고 사는 꼴이 되어서 모기 등쌀에 시달리고 숲속에서 원시인 삶을 살았을 것이다. 그랬으면 선생 인생이 원시인 같다고 하나님이 쓰지도 않았을 것이다.

하나님은 그렇게 초라하게 선생의 인생을 두지 않으시고 월명동의 동에서 서까지 모두 구상을 주시며 “하나님 궁을 짓고 크게 살아라.” 하셨다.



크게 해야 크게 된다.
마음을 크고 웅장하게 해야 하나님, 전지 전능자와 같이 살게 된다.

선생은 어릴 때 작고 좁은 골짜기인 시골에서 살다 보니 도시에 살기를 그렇게도 원했다. 도시를 천국으로 보았다.

그 후 커서 도시에 가서 좀 살아 보니 바로 불편함을 알았다. 공기가 안 좋고 소음이 많고 사람이 많아서다. 깊은 생각을 못 했다. 도시의 삶이 깨끗한 시골만 못 했다.

시골은 하나님의 자연적인 산과 돌과 물과 나무들이 갖춰져 있다. 이런 곳을 개발하면
도시의 배경이 따라올 수가 없다고 생각했다. 도시는 아무리 개발해도 산도 계곡도 울창한 숲도 바위산도 만들 수가 없다.

대부분 공부하려면 도시로 가야 한다. 또 흔히들 돈 벌려면 회사를 다녀야 하기에 도시로 가야 한다.

그러나 하나님은 하나님의 성산은 항상 산에다 두셨다.
(사 56:7) “내가 그를 나의 성산으로 인도하여 기도하는 내 집에서 그들을 기쁘게 할 것이며 그들의 번제와 희생은 나의 단에서 기꺼이 받게 되리니 이는 내 집은 만민의 기도하는 집이라 일컬음이 될 것임이라”

인자들은 산을 좋아한다. 산에 가서 배운다. ‘지자요수 인자요산(智者樂水仁者樂山)이다.’라는 말이 있다. ‘지혜로운 사람은 물을 좋아하고, 어진 사람은 산을 좋아한다.’는 말이다.

예수님도 산에서 살았고 많은 자들이 산에서 수도 생활도 한다.

◇ 하나님 성령 성자와 예수님도 선생을 늘 산을 좋아하게 하셨다. 어디 가든지 산을 배경으로 주셨다. 그리고 명산에서 기도하게 하고 거기를 “정원처럼 써라.” 하셨다.

하나님이 우주 만물 주인이시다. 하나님이 태초 때부터 좋은 곳들을 만드셨다. 거기를 항상 세상에 주지 않고, 하나님의 전을 두셨다.




◇ 성경을 보면
- 하나님이 시내산에 강림하시사
모세를 만나 말씀을 주시고 능력을 보이셨다.
(출 3:12) “하나님이 가라사대 내가 정녕 너와 함께 있으리라 네가 백성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낸 후에 너희가 이 산에서 하나님을 섬기리니 이것이 내가 너를 보낸 증거니라”

(출 19:20) “여호와께서 시내산 곧 그 산꼭대기에 강림하시고 그리로 모세를 부르시니 모세가 올라 가매”

이 산에서 준 말씀으로 4000년 역사를 펴셨다.

- 예수님도 산에서 청중을 모아 놓고 말씀하게 하셨다.
(마 5:1-2) “예수께서 무리를 보시고 산에 올라가 앉으시니 제자들이 나아온지라 입을 열어 가르쳐 가라사대”

이 말씀으로 2000년 신약역사 펴셨다.

이와 같이 하나님은 높은 곳에 자리를 잡고 거기 나타나셨다. 하나님은 산에 강림하시사 시대 말씀을 주시면서 이끌어 오셨다.

- 선생도 20년 동안 집중적으로 시대 사명을 예비할 때 거의 산에서 기도하면서 배웠다. 감람산, 대둔산 등 조용한 곳에서
천 년 역사의 말씀을 주셔서 역사를 이루며 왔다. 도시에서는 절대 조용한 시간을 만들 수가 없다.

◇ 산에서 역사하며 하나님이 행하신 것을 보아라. 에덴동산에 아담 하와가 살았다.
갈멜산에서 엘리야가 바알과 아세라 선지자들을 물리쳤다. 감람산에서 예수님이 설교하셨다. 모리아산에서 아브라함이 이삭을 제물로 바쳤다.
시내산에서 모세가 하나님의 사명을 받고 율법을 받았다. 시온산에 예루살렘 성이 세워졌다. 아라랏산에 노아 방주가 머물렀다. 헤르몬산(변화산)에서 예수님이 엘리야와 모세의 영을 만났다.

이처럼 성경을 보면 왕들이나 큰 사람들은 산과 인연이 깊다. 하나님은 큰 사람을 큰 산으로 비유하기도 하고, 그 산에서 수도 생활 한 자는 그 산을 상징하기도 하였다.

예수님이 선생에게 “너는 대둔산 바위산같이 산의 웅장함도 아름다움도 신비함도 받아라. 그리고 그런 말씀을 배워라.” 하셔서 대둔산에서 수도 생활을 했다.

아담 하와는 에덴동산, 모세는 시내산, 엘리야는 갈멜산, 예수님은 감람산이다.

전설이 있으면 거기 거하여 이룬 자가 주인 되게 한다.

◇ 하나님은 “산은 거룩한 곳이다.” 하시며 모세에게도 “이곳에 나 하나님이 다닌다. 거룩한 곳이다. “네 발의 신을 벗어라.” 하셨다.
(출 3:5) “하나님이 가라사대 이리로 가까이 하지 말라 너의 선 곳은 거룩한 땅이니 네 발에서 신을 벗으라”

◇ 어느 날 월명동 기도동산을 선생이 청소하니 하나님은 “나 여기 다닌다.” 하셨다. 고로 즉시 대리석을 깔아 하나님의 길을 만들었다. 오직 하나님만 다니시게 하였다. 그래야 깨닫고 그같이 대한다.

‘성령폭포’ 수영장도 그래서 금지시켰다.
구분해야 깨닫는다. 거룩히 구분해서 써야 한다.

막 쓰는 자, 막 사용하는 자 - ‘하나님 것’과 ‘자기 것’을 구분해서 알아야 한다.

◇ 롯은 도시를 좋아해 소돔 성 도시를 택했다. 그 도시가 타락되니 하나님은 소돔 고모라를 멸했다.

반대로 아브라함은 산을 좋아해서 가나안 땅의 산에서 하나님께 제물을 매일 드리며
가나안 땅을 차지했다. 하나님이 동에서 서까지 그와 그 후손에게 주셨다. 축복해 주셨다.

*  창세기 13장
12 아브람은 가나안 땅에 거하였고 롯은 평지 성읍들에 머무르며 그 장막을 옮겨 소돔까지 이르렀더라
13 소돔 사람은 악하여 여호와 앞에 큰 죄인이었더라
14 롯이 아브람을 떠난 후에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눈을 들어 너 있는 곳에서 동서남북을 바라보라
15 보이는 땅을 내가 너와 네 자손에게 주리니 영원히 이르리라
16 내가 네 자손으로 땅의 티끌 같게 하리니 사람이 땅의 티끌을 능히 셀 수 있을찐대 네 자손도 세리라
17 너는 일어나 그 땅을 종과 횡으로 행하여 보라 내가 그것을 네게 주리라

◇ 하나님 종교는 산에서 출발했다. 에덴동산이다. 기독교는 산과 사연이 많다.
산에 기도원이 많고, 예수님도 산에서 설교를 많이 하셨다.

하나님의 새 역사에도 하나님은 선물로
아름다운 산을 주셨다. 월명동, 해가 뜨는 데서 지는 데까지 주셨다. 20여 가지 형상과 모양이 있다.

◇ 하나님 성령 성자 예수님이 선물을 주시면 그것으로 인해 계속 안 되는 것도 이뤄지게 하신다. 하나님의 비밀이다. 그로 축복의 근원이 되게 하신다.



<2024년 8월 13일 화요일 새벽 잠언>

14. 역사는 마치 제철 과일 같아서, 하나님이 보낸 인물이 한때 자기 기간에 뛰고 끝난다. 마치 건물 건축하듯이 해 놓는다. 때 놓치면 못 한다.

15. 월명동도 힘들었지만 제때 해 놓아서 그렇게 만들어 놓았다. 지금은 시간을 줘도 못 하고, 자료가 없어 못 한다. 하나님이 때를 맞춰 하시고 끝났다. 얼마나 귀하고, 가치 있는 곳인지를 알아라. 아는 만큼 쓴다.

16. 선생은 그 전부터 배우고 준비해서 한 것이다.

17. 역사를 처음 시작할 때, 사명자 하나로 시작하니 아무도 모른다. 복음을 듣고 행하는 자만 안다. 아는 것도 행한 만큼만 안다.

18. 역사가 수십 년 가면, 그때는 더 많은 자가 안다. 그때도 역시 그 주관권만 안다.

19. 기다린 새 역사에 참여한 자가 끝까지 가기만 하면 영원토록 복 있는 자다.

20. 자기를 중심하면 자기 길로 간다.

21. 하나님은 어느 시대든지 구원자를 보내 놓고, 보낸 자를 통해 뭉쳐 행하신다.

22. 광야에서 구원자 모세를 버리고 하나님을 믿어도 하나님과 통하지 않았다. 이미 하나님과의 연결은 모세를 버림으로 끝났다. 보낸 자 모세를 불신함이 하나님 불신이 됐다.

23. 메시아 예수님의 육신을 죽였어도 예수님은 자기 주관권 2000년까지는 하나님과 행하셨다. 2000년이 끝나고, 약속한 차원 높은 다른 새 주관권 성약역사는 영으로 행하신다. 영으로 왔으니 육신 쓰고 시대 사명자와 일체 되어 행하신다.

24. 새 주관권에서 새로운 자가 정치하듯, 모든 만사를 새로운 자가 한다. 영으로 다시 오신 예수님은 보낸 자를 육으로 삼고, 예수님 당세 때 하나님이 예수님을 쓰고 행하시듯 하신다.

25. 구약 4000년 – 신약 2000년 – 성약 1000년 모두 하나님이 하신다. 시대가 다르니 차원 높여 그 시대 사람을 보내서 하신다.

26. 부모가 죽으면, 자녀가 부모 되어 가정 역사를 펴 간다. 이와 같이 역사도 새 시대의 사람들이 한다. 하나님이 구원자 보내고 시대 택한 자들이 모여들어 하게 하신다.



♤ 간절히 구하고 표적이 일어나는 기도 3 - 끝까지다.

고생되어도 의를 행하며, 공의의 하나님을 사모합니다  

미래 세상, 영의 세계가 없다면 육신 편한 대로 사는 것이 지혜이나 영의 세계가 반드시 있으니 영의세계를 우리는 반드시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뜻에 벗어나서 하나님을 안 믿고 육신의 삶에만 체질 되고 길들어 편안하게 살아도 육신 일생은 영원한 기간에 비해서는 너무나도 짧고 잠깐의 기간입니다.

육신이 편한 대로 살아가는 자는 사망이 덮치나니 우리는 영원하신 하나님의 뜻에 맞춰 아는 자답게 살아야 겠습니다. 그래야만 육도 영도 삶이 쉽고, 구원받고 영원토록 잘 됩니다.

미련없이 영도 육도 혼도 끝장나게 살게 하옵소서. 좋은 습관을 가지게 하시고 큰 말씀처럼 크게 생각하고 크게 행하게 하옵소서.

아는 것도 행한 만큼만 알고 대하니 더욱 연구하고 기도하고 깨달아 영원토록 복의 근본자이신 하나님과 통하게 하옵소서.

새 역사의 가치를 알지 못하고, 전심으로 하지 않으면 하나님의 그 뜻을 이룰 수 없나니 하나님은 어느 시대든지 구원자를 보내 놓고, 보낸 자를 통해 뭉쳐 행하시는 것을 좋아하십니다  

새 주관권에서는 새로운 자가 정치하듯, 새 시대에는 모든 만사를 새로운 자가 합니다.

축복의 근원되시는 거룩하신 하나님 ! 안되는 것도 되게 하시는 하나님 ! 간절히 하나님의 역사하심을 주님의 이름으로 간구드립니다. 아멘.


‘공의(公義)’는
하나님의 사랑의 법이다


<이사야 11:1-5절> “이새의 줄기에서 한 싹이 나며 그 뿌리에서 한 가지가 나서 결실할 것이요 여호와의 신 곧 지혜와 총명의 신이요 모략과 재능의 신이요 지식과 여호와를 경외하는 신이 그 위에 강림하시리니 그가 여호와를 경외함으로 즐거움을 삼을 것이며 그 눈에 보이는대로 심판치 아니하며 귀에 들리는대로 판단치 아니하며 공의로 빈핍한 자를 심판하며 정직으로 세상의 겸손한 자를 판단할 것이며 그 입의 막대기로 세상을 치며 입술의 기운으로 악인을 죽일 것이며 공의로 그 허리띠를 삼으며 성실로 몸의 띠를 삼으리라”


“확실히 증거할 때
하나님도 성령도 주도
나타나신다”


◇ 하나님은 천지 만물과 사람을 창조하시고 지금껏 공의롭게 다스려 오셨습니다.

하나님은 처음부터 나중까지 누구에게나 공의롭게 대해 주십니다. 그러니 누구나 공의롭게 살아야 합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을 섬기고 사랑하는 것을 낙으로 삼는 자, 지혜와 모략과 지식의 하나님의 신이 임한 자를 보내사 공의로 불의를 채찍질하고 심판하시며 서로 화평케 하여서 하나 되어 이상 세계를 이루게 하십니다.

◇ ‘공의’는 있는 자에게나 없는 자에게나    그들이 행한 대로 거기 맞춰 대하는 것입니다.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의 행하심은 공의롭게 그 행하는 대로 대하십니다.
  
자기 마음, 생각, 행위대로 그릇이 차도록 그 존재대로 베풀면서 공정하게 주를 통해 베푸십니다.

자기가 완악하면 하나님도 그같이 대하십니다. 자기 차원대로 대하십니다.

◇ 가령, 한 자리에서 세 사람이 같이 일을 하고 갔는데 그중에 많이 가지고 있는 자는 많이 있으니 안 주고 “보다 가난한 자에게만 주어야죠.” 하고 하나님께 물어보니 “일한 대로 줌이 공의다.” 하셨습니다.

하나님이 말씀하시기를 “자기가 가지고 있는 것과는 상관이 없는 것이다. 그것은 자기가 전에 수고하여 얻은 것이 아니냐.      수고의 대가를 받고 그가 가난한 자에게 주는 것은 자기 뜻이다. 그때그때 행한 대로 줌이 공의다.” 하셨습니다.

연구하고 알아야 다스리고 잡고 승리합니다.

◇ 하나님은 온 세상 각 나라 왕들과 주권자들을 세우고 정치인들을 세우고 만왕의 왕으로서 다스려 오셨습니다.    

왕들과 백성들과 종교인들과 경제인들 학문 세계, 과학의 세계, 운동하는 세계    각 분야대로 공의롭게 알고 그들에게 상벌을 주시며 세밀하게 다스려 오셨습니다.

공의롭게 행치 않는 자들에게도 모두 행한 대로 대하셨습니다.

하나님의 무소불능 전지전능하심은 수백만 가지입니다. 그중에 하나가 절대 공의로 행하신다는 것입니다. 그같이 안 했으면 모두 다 멸망받았습니다.

하나님 성령 성자는 하나님이 시대마다 보낸 구원자들을 쓰고 모두 공의롭게 행하셨습니다.

공의로 대하여도 불만과 시기와 질투와 원망을 함은 자신이 공의롭게 살지 못하여서입니다. 그런 자들은 공의를 모르고, 제 생각대로 안 해 주면 하나님, 성령도 원망하고 악평합니다.

하나님은 수백억의 그 사자들과 천사들로    지구 세상 모든 자들과 하나님을 믿고 순종하며 사는 자들을 모두 공의롭게 다스리십니다.

공의는 진리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의 법입니다. 공의롭게 행치 않은 대로 자기마다 받습니다.

자기 육을 위해 수고한 대가대로 또 영을 위해 하나님께 대한 대가대로 공의의 대가는 따릅니다.

하나님은 저울같이 공의롭게 행하십니다. 저마다의 의를 공의롭게 저울에 달듯 하십니다. 악을 행한 것도 저울에 달듯 하십니다. 저울에 달기 전에 악을 회개하면 의만 저울에 다십니다. 그리고 대가를 주십니다.

의의 대가를 각종으로 쓰시되, 그의 생명을 살려 주는 데 쓰기도 하고 축복으로 쓰기도 하십니다.

공의대로 하면 사탄이 힐문하지 못합니다. 공의롭게 하여야 전체가 개성대로 제대로 큽니다.
  
◇ 공적이 없는 자에게 상을 주면 수고를 하지 않은 고로 가치를 모르고 버리게 됩니다. 공의를 행하는 자는 곧 의를 행하는 자입니다.

◇ 공의를 벗어나면 탈선되고 스스로 망합니다. 개인 가정 민족 세계가 다 해당됩니다.



좌우로 치우쳐 행치 않음이 공의입니다. 공의롭지 않은 자, 심판받습니다.

공의는 좌우로 치우치지 않는 것입니다. 고로 파괴되거나 무너지거나 포기하지도 않습니다.

◇ 공의는 해 준 만큼 받고 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공의는 사람들의 공의와 다릅니다. 사람은 수고한 만큼 못 해주지만, 하나님은 전지전능하시므로 10배 100배 더 주시며 대하는 공의입니다.
  
◇ 공의롭게 해 달라고 기도하기 바랍니다.하나님은 온 인류에게나 새로운 역사 때 공의롭게 그 행한 대로 항상 갚아 주시며 매일 그 천사들과 행하십니다.

의를 행해야 합니다. 그래야 그 대가가 큽니다. 악인들이 의인들에게 누명을 씌우고 자기들의 악한 행위대로 불의를 행하여도 하나님은 그렇지 않나 확인하시고 공의롭게 갚아 주십니다. 그리고 의인들 보라고 불의한 자들에게   계속 그 행위대로 갚아 주십니다. 지옥은 공의롭게 살지 못한 자들이 그 행위대로 스스로 가는 곳입니다.

하나님이 창조한 사람들은 하나님께 감사하고 사랑하며 사는 것이 공의입니다.

하나님이 창조한 세상에 살면서 창조주 주인을 모르고 다른 신을 섬기는 자들은    공의롭지 못한 자들입니다. 고로 그 행위대로 하나님은 심판하십니다.

하나님은 “짐승들도 제 주인을 아는데      사람들이 사람의 주인인 나 하나님을 모른다. 짐승만도 못하다.”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을 마음과 뜻과 목숨 다해 섬기고 사랑하고 이웃 형제들을 그같이 대해 주며 살아야 공의입니다.

공의는 하나님이 말씀한 대로 풀고 행하는 것입니다. 이를 벗어난 것은 불의입니다.

◇ 재판할 때나 선악을 구분할 때    공의에서 벗어나면 고통을 받게 됩니다.    하나님은 공의롭게 재판하시고 심판도 하십니다.  

하나님은 공의로 심판하시니 그의 심판이 의로우십니다. 전능자 하나님은 태양같이 지구같이 언제나 공의롭게 행하십니다.

형제들을 듣는 대로 판단하고 보는 대로 판단하고 대함은 공의가 아닙니다. 사람으로서 하나님을 따라 행함이 공의입니다.

◇ 하나님의 공의대로 살지 않으니 고통의 세계가 되어 삽니다. 공의롭게 행치 않으면 행치 않은 만큼 고통이 대가로 옵니다.

창조자 하나님 성령님 성자, 그리고 땅에 보낸 자의 말씀을 듣고 의롭게 삶이 공의입니다.

자기가 공의롭게 못 하면 전능하신 하나님의 행함이나 사람들이 공의롭게 행함을 오히려 공의롭지 않게 봅니다.

성령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성경의 공의를 배우라. 하나님이 보낸 자를 통해 공의를 배우라. 쉽고 가볍다.” 하셨습니다.



♤ 생명과 문제해결을 위한 21일 특별기도 19/21

성령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성경의 공의를 배우라. 하나님이 보낸 자를 통해 공의를 배우라. 쉽고 가볍다.” 하셨습니다.

사람은 공의롭게 못 하나 하나님은 자기가 의를 행한 대로 공의롭게 다 갚아 주시니 성령의 역사대로 행하겠습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을 섬기고 사랑하는 것을 낙으로 삼는 자, 지혜와 모략과 지식의 하나님의 신이 임한 자를 보내사 공의로 불의를 채찍질하고 심판하시며 서로 화평케 하여서 하나 되어 이상 세계를 이루게 하십니다.

하나님의 무소불능 전지전능하심은 수백만 가지입니다. 그중에 하나가 절대 공의로 행하신다는 것입니다. 공의는 진리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의 법입니다.

공의대로 하지 않으면 사탄이 힐문합니다. 공의를 벗어나면 망합니다. 공의롭게 하여야 전체가 개성대로 제대로 큽니다.

하나님이 창조한 사람들은 하나님께 감사하고 사랑하며 사는 것이 공의이니 하나님을 마음과 뜻과 목숨 다해 섬기고 사랑하고 이웃 형제들을 그같이 대해 주며 살게 하소서. 차원을 높이게 하소서.

좌우로 치우쳐 행치 않게 하시고 공의롭지 않은 자, 심판받으니 하나님은 공의로서 심판하시며 그의 심판은 의로우십니다.

형제들을 듣는 대로 판단하고 보는 대로 판단하고 대함은 공의가 아닙니다. 사람으로서 하나님을 따라 행함이 공의입니다. 좌우로 치우쳐 행치 않음이 공의입니다.

연구하고 알고 다스리고 승리하게 하옵소서. 의를 행하게 하옵소서. 오늘도 사랑하는 주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 행복한 편지

【시편 121】
내가 산을 향하여 눈을 들리라.
나의 도움이 어디서 올까.

나의 도움은 천지를 지으신 여호와께로다 ✍️

https://youtu.be/JOeF2VjeGG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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