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람이 길든 대로 마음도 몸도 그대로 해야 편하다. 체질이 되어서, 길이 들어서다. 길든 대로 체질에 배고, 익힌 대로 편한 것이다.

하나님을 안 믿고 사는 자는 그 길이 들어서 그것이 편한 것이다. 후에 영과 혼이 지옥에 가서 고생하든지 말든지 생각 안 하고 살기에 편한 것만 생각한다.

그러하기에 ‘편하고 안 편한 것은 길든 대로’다.

- 일에 길든 자는 일하는 것이 그냥 노는 것보다 편하다고 하고
- 운동하는 자는 산을 타고 등산 운동을 하는 것이 편하다고 하고
- 노는 자는 운동 안 하고 쉬는 것이 편하다고 운동을 거의 안 한다.

사람은 체질에 길이 드는 대로 그것을 할 때 편한 것이다.

- 음식도 자기 체질이 길이 든 대로
그것을 먹어야 기쁘고, 체질에 맞고 편하다고 좋아하나니

한 사람이 좋아하는 대로 표준 할 수가 없는 것이다. 모든 것은 사람을 기준으로 하여 표준 하지 않고 의를 표준하고 행한 것을 공의로 보느니라. 그러므로 고생되어도 의를 행하기다.

- 새벽에 일찍 일어나서 기도하는 자들은 그것을 해야 편하다. 새벽에 기도를 안 하는 자들은 “하면 힘들다.”고 한다. 이는 체질이 안 돼서다.

◇ 자기 육체가 길든 대로 살아가는 것이 편하다. 그러나 편한 것만 생각 말고
근본은 미래의 영과 혼을 위해서 살아야 한다. 자기 편한 대로만 살면
영원토록 영과 혼이 고통을 받기 때문에
우선 편한 대로 살아가는 자 사망이 덮친다.


미래 세상, 영의 세계만 없으면
육신 편한 대로 사는 것이 지혜다.
그러나 영의 세계가 반드시 있으니 영을 위해 살아야 된다.


또한 그냥 있는 대로, 되는 대로 사는 것이 아니라 ‘육계 세상만이라도 잘 따져 보기’ 바란다. 그러면 미래, 앞날을 위해서 고생돼도 의를 행하며 열심히 좌절 말고 살아야 함을 알게 된다.

영원하신 하나님의 뜻에 맞춰 길이 들어 살아야 한다. 그래야만 육도 영도 삶이 쉽고, 구원받고 영원토록 잘 된다.

하나님의 뜻에 벗어나서 하나님을 안 믿고
육신의 삶에만 체질 되고 길들어 편안하게 살아도 육신 일생은 잠깐의 기간이다. 영원한 기간에 비해 너무나도 짧다.

구원을 못 받고 사는 삶은 부귀영화를 누리어도 육신만 잠깐 편안했지, 영과 혼은 영원토록 고통과 사망이다.

고로 의를 행하며 하나님 뜻을 위해 사는 삶에 길을 들이고 마음도 삶도 길을 들여 살아서 영원한 천국으로 가야 하나니 미련없이 행하자.



◇ 예수님이 선생 어렸을 때 “좋은 것을 길들이고 습관 들여 체질을 만들어라. 그렇게 해 놓아야 행하기 쉽다.
나쁜 것 길들이면 해야 기쁘고 좋으니 하게 된다. 새벽에도 일찍 일어나는 습관을 들이고 기도 습관 들여 놓아야 신앙생활 하기 쉽다.” 하셨다.

그래서 어릴 때부터 힘들어도 예수님의 말씀대로 성경대로 사는 것을 습관 들이고 길을 들였다. 성경 읽는 것 길들이고 설교할 때 글 쓰는 것 길들였다. 그리고 평소와 새벽에 기도하는 것 길들이고
기도를 오래 하는 것도 길을 들였다.
그랬더니 지금은 아예 체질이 되었다.

아무리 강한 몸이고 건강하여도
길을 안 들여 놓고 습관 안 들여 놓으면
새벽에 일찍 일어나지도 못하고 기도도 못 한다.

◇ 의의 생활도 그러하다. 각종 의의 삶에 길을 들여 체질을 변화시켜 놓아야 보람 있게 산다.

버릇은 제2의 천성이다.
좋은 것은 습관 들여
놓아야 하기 쉽다.

운동이나 각종 것, 자기 습관이 들면
비가 오고 눈이 와도 기뻐하며 뛰며 행한다.

선생도 20년 동안 기도 생활, 길을 들여 놓아서 불가능한 상황에서도 보다 쉽게 했다.

습관을 들여 놓지 않으면 마음도 몸도 체질 되어 하기가 정말 힘들고 하기 싫다. 좋은 것인데도 체질이 안 되니, 하기 싫어 성공 길을 벗어나서 편하게 게으르게 산다.
결국은 앞날에 가서 인생 망하고 고통 세계에서 살게 된다.

◇ 안 해 버릇하는 자는
- 체질이 안 받아들여 좋은 음식도 못 먹는다.
- 환경 좋은 곳도 별로라고 하며 마음도 체질도 안 맞아 못 산다.

고로 마음도 체질도 좋은 것으로 길들여 놓아야 쉽게 한다.



◇ 크게 하는 것, 길들여 놓아라. 그렇지 않으면 좋은 것도 안 좋아하고 작은 옹달샘 삶을 산다.

좋은 것에 체질이 안 된 자는 집도 토끼집 같은 작고 허름한 데서 사는 것이 좋다고 산다. “정원도 크면 부담된다. 별로다.
그냥 익숙한 대로 작게 살기 원한다.”고 한다.

곧 무너질 것 같은 초가집에 살면서 그 집에만 마음을 길들여 놓았기에 집을 때려 부수고 다시 크게 짓자고 하면 옛날 노인들같이 막 화를 내고 “미쳤냐?” 한다.

◇ 그래서 선생도 옛날 선생이 태어난 오래된 초가집을 때려 부수고 다시 짓자고 하다가 아버지께 혼났다.

그 초가집에서 계속 살 때 예수님께서 “때려 부수고 새집 짓자.” 하셨다. 그래서 알겠다고 대답하고 아버지가 새집 짓는 것을 반대하니 ‘어떻게 할까.’ 하다가 방법을 달리해 보았다.

‘아버지와 어머니가 밭에 가신 사이 무너뜨려 보자.’ 하고서 동생들과 함께 살던 초가집을 발로 차고 밀어붙이니
그 자리에서 순간 집이 무너졌다. 그렇게도 오래되고 약한 집이었다.

언제 무너질지 모르는 집에서 조금만 더 그 집에 살았으면 우리 식구는 죽을 뻔했다.
예수님은 “속이 시원하다.” 하시며 좋아하셨다.

잘못된 것에 습관 든 자들은 습관 든 대로 다 살아간다.

선생도 처음에는 그러했다. 지금처럼 월명동에 대한 하나님의 구상을 못 받았을 때였다. 10대 때 내 나름대로 계획했었다.
겨우 집이나 하나 새로 짓고 좋은 환경 만들고 살려고 계획했다.

그렇게 했으면, 했어도 산새같이 숲속에 작은 새집 짓고 사는 꼴이 되어서 모기 등쌀에 시달리고 숲속에서 원시인 삶을 살았을 것이다. 그랬으면 선생 인생이 원시인 같다고 하나님이 쓰지도 않았을 것이다.

하나님은 그렇게 초라하게 선생의 인생을 두지 않으시고 월명동의 동에서 서까지 모두 구상을 주시며 “하나님 궁을 짓고 크게 살아라.” 하셨다.



크게 해야 크게 된다.
마음을 크고 웅장하게 해야 하나님, 전지 전능자와 같이 살게 된다.

선생은 어릴 때 작고 좁은 골짜기인 시골에서 살다 보니 도시에 살기를 그렇게도 원했다. 도시를 천국으로 보았다.

그 후 커서 도시에 가서 좀 살아 보니 바로 불편함을 알았다. 공기가 안 좋고 소음이 많고 사람이 많아서다. 깊은 생각을 못 했다. 도시의 삶이 깨끗한 시골만 못 했다.

시골은 하나님의 자연적인 산과 돌과 물과 나무들이 갖춰져 있다. 이런 곳을 개발하면
도시의 배경이 따라올 수가 없다고 생각했다. 도시는 아무리 개발해도 산도 계곡도 울창한 숲도 바위산도 만들 수가 없다.

대부분 공부하려면 도시로 가야 한다. 또 흔히들 돈 벌려면 회사를 다녀야 하기에 도시로 가야 한다.

그러나 하나님은 하나님의 성산은 항상 산에다 두셨다.
(사 56:7) “내가 그를 나의 성산으로 인도하여 기도하는 내 집에서 그들을 기쁘게 할 것이며 그들의 번제와 희생은 나의 단에서 기꺼이 받게 되리니 이는 내 집은 만민의 기도하는 집이라 일컬음이 될 것임이라”

인자들은 산을 좋아한다. 산에 가서 배운다. ‘지자요수 인자요산(智者樂水仁者樂山)이다.’라는 말이 있다. ‘지혜로운 사람은 물을 좋아하고, 어진 사람은 산을 좋아한다.’는 말이다.

예수님도 산에서 살았고 많은 자들이 산에서 수도 생활도 한다.

◇ 하나님 성령 성자와 예수님도 선생을 늘 산을 좋아하게 하셨다. 어디 가든지 산을 배경으로 주셨다. 그리고 명산에서 기도하게 하고 거기를 “정원처럼 써라.” 하셨다.

하나님이 우주 만물 주인이시다. 하나님이 태초 때부터 좋은 곳들을 만드셨다. 거기를 항상 세상에 주지 않고, 하나님의 전을 두셨다.




◇ 성경을 보면
- 하나님이 시내산에 강림하시사
모세를 만나 말씀을 주시고 능력을 보이셨다.
(출 3:12) “하나님이 가라사대 내가 정녕 너와 함께 있으리라 네가 백성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낸 후에 너희가 이 산에서 하나님을 섬기리니 이것이 내가 너를 보낸 증거니라”

(출 19:20) “여호와께서 시내산 곧 그 산꼭대기에 강림하시고 그리로 모세를 부르시니 모세가 올라 가매”

이 산에서 준 말씀으로 4000년 역사를 펴셨다.

- 예수님도 산에서 청중을 모아 놓고 말씀하게 하셨다.
(마 5:1-2) “예수께서 무리를 보시고 산에 올라가 앉으시니 제자들이 나아온지라 입을 열어 가르쳐 가라사대”

이 말씀으로 2000년 신약역사 펴셨다.

이와 같이 하나님은 높은 곳에 자리를 잡고 거기 나타나셨다. 하나님은 산에 강림하시사 시대 말씀을 주시면서 이끌어 오셨다.

- 선생도 20년 동안 집중적으로 시대 사명을 예비할 때 거의 산에서 기도하면서 배웠다. 감람산, 대둔산 등 조용한 곳에서
천 년 역사의 말씀을 주셔서 역사를 이루며 왔다. 도시에서는 절대 조용한 시간을 만들 수가 없다.

◇ 산에서 역사하며 하나님이 행하신 것을 보아라. 에덴동산에 아담 하와가 살았다.
갈멜산에서 엘리야가 바알과 아세라 선지자들을 물리쳤다. 감람산에서 예수님이 설교하셨다. 모리아산에서 아브라함이 이삭을 제물로 바쳤다.
시내산에서 모세가 하나님의 사명을 받고 율법을 받았다. 시온산에 예루살렘 성이 세워졌다. 아라랏산에 노아 방주가 머물렀다. 헤르몬산(변화산)에서 예수님이 엘리야와 모세의 영을 만났다.

이처럼 성경을 보면 왕들이나 큰 사람들은 산과 인연이 깊다. 하나님은 큰 사람을 큰 산으로 비유하기도 하고, 그 산에서 수도 생활 한 자는 그 산을 상징하기도 하였다.

예수님이 선생에게 “너는 대둔산 바위산같이 산의 웅장함도 아름다움도 신비함도 받아라. 그리고 그런 말씀을 배워라.” 하셔서 대둔산에서 수도 생활을 했다.

아담 하와는 에덴동산, 모세는 시내산, 엘리야는 갈멜산, 예수님은 감람산이다.

전설이 있으면 거기 거하여 이룬 자가 주인 되게 한다.

◇ 하나님은 “산은 거룩한 곳이다.” 하시며 모세에게도 “이곳에 나 하나님이 다닌다. 거룩한 곳이다. “네 발의 신을 벗어라.” 하셨다.
(출 3:5) “하나님이 가라사대 이리로 가까이 하지 말라 너의 선 곳은 거룩한 땅이니 네 발에서 신을 벗으라”

◇ 어느 날 월명동 기도동산을 선생이 청소하니 하나님은 “나 여기 다닌다.” 하셨다. 고로 즉시 대리석을 깔아 하나님의 길을 만들었다. 오직 하나님만 다니시게 하였다. 그래야 깨닫고 그같이 대한다.

‘성령폭포’ 수영장도 그래서 금지시켰다.
구분해야 깨닫는다. 거룩히 구분해서 써야 한다.

막 쓰는 자, 막 사용하는 자 - ‘하나님 것’과 ‘자기 것’을 구분해서 알아야 한다.

◇ 롯은 도시를 좋아해 소돔 성 도시를 택했다. 그 도시가 타락되니 하나님은 소돔 고모라를 멸했다.

반대로 아브라함은 산을 좋아해서 가나안 땅의 산에서 하나님께 제물을 매일 드리며
가나안 땅을 차지했다. 하나님이 동에서 서까지 그와 그 후손에게 주셨다. 축복해 주셨다.

*  창세기 13장
12 아브람은 가나안 땅에 거하였고 롯은 평지 성읍들에 머무르며 그 장막을 옮겨 소돔까지 이르렀더라
13 소돔 사람은 악하여 여호와 앞에 큰 죄인이었더라
14 롯이 아브람을 떠난 후에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눈을 들어 너 있는 곳에서 동서남북을 바라보라
15 보이는 땅을 내가 너와 네 자손에게 주리니 영원히 이르리라
16 내가 네 자손으로 땅의 티끌 같게 하리니 사람이 땅의 티끌을 능히 셀 수 있을찐대 네 자손도 세리라
17 너는 일어나 그 땅을 종과 횡으로 행하여 보라 내가 그것을 네게 주리라

◇ 하나님 종교는 산에서 출발했다. 에덴동산이다. 기독교는 산과 사연이 많다.
산에 기도원이 많고, 예수님도 산에서 설교를 많이 하셨다.

하나님의 새 역사에도 하나님은 선물로
아름다운 산을 주셨다. 월명동, 해가 뜨는 데서 지는 데까지 주셨다. 20여 가지 형상과 모양이 있다.

◇ 하나님 성령 성자 예수님이 선물을 주시면 그것으로 인해 계속 안 되는 것도 이뤄지게 하신다. 하나님의 비밀이다. 그로 축복의 근원이 되게 하신다.



<2024년 8월 13일 화요일 새벽 잠언>

14. 역사는 마치 제철 과일 같아서, 하나님이 보낸 인물이 한때 자기 기간에 뛰고 끝난다. 마치 건물 건축하듯이 해 놓는다. 때 놓치면 못 한다.

15. 월명동도 힘들었지만 제때 해 놓아서 그렇게 만들어 놓았다. 지금은 시간을 줘도 못 하고, 자료가 없어 못 한다. 하나님이 때를 맞춰 하시고 끝났다. 얼마나 귀하고, 가치 있는 곳인지를 알아라. 아는 만큼 쓴다.

16. 선생은 그 전부터 배우고 준비해서 한 것이다.

17. 역사를 처음 시작할 때, 사명자 하나로 시작하니 아무도 모른다. 복음을 듣고 행하는 자만 안다. 아는 것도 행한 만큼만 안다.

18. 역사가 수십 년 가면, 그때는 더 많은 자가 안다. 그때도 역시 그 주관권만 안다.

19. 기다린 새 역사에 참여한 자가 끝까지 가기만 하면 영원토록 복 있는 자다.

20. 자기를 중심하면 자기 길로 간다.

21. 하나님은 어느 시대든지 구원자를 보내 놓고, 보낸 자를 통해 뭉쳐 행하신다.

22. 광야에서 구원자 모세를 버리고 하나님을 믿어도 하나님과 통하지 않았다. 이미 하나님과의 연결은 모세를 버림으로 끝났다. 보낸 자 모세를 불신함이 하나님 불신이 됐다.

23. 메시아 예수님의 육신을 죽였어도 예수님은 자기 주관권 2000년까지는 하나님과 행하셨다. 2000년이 끝나고, 약속한 차원 높은 다른 새 주관권 성약역사는 영으로 행하신다. 영으로 왔으니 육신 쓰고 시대 사명자와 일체 되어 행하신다.

24. 새 주관권에서 새로운 자가 정치하듯, 모든 만사를 새로운 자가 한다. 영으로 다시 오신 예수님은 보낸 자를 육으로 삼고, 예수님 당세 때 하나님이 예수님을 쓰고 행하시듯 하신다.

25. 구약 4000년 – 신약 2000년 – 성약 1000년 모두 하나님이 하신다. 시대가 다르니 차원 높여 그 시대 사람을 보내서 하신다.

26. 부모가 죽으면, 자녀가 부모 되어 가정 역사를 펴 간다. 이와 같이 역사도 새 시대의 사람들이 한다. 하나님이 구원자 보내고 시대 택한 자들이 모여들어 하게 하신다.



♤ 간절히 구하고 표적이 일어나는 기도 3 - 끝까지다.

고생되어도 의를 행하며, 공의의 하나님을 사모합니다  

미래 세상, 영의 세계가 없다면 육신 편한 대로 사는 것이 지혜이나 영의 세계가 반드시 있으니 영의세계를 우리는 반드시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뜻에 벗어나서 하나님을 안 믿고 육신의 삶에만 체질 되고 길들어 편안하게 살아도 육신 일생은 영원한 기간에 비해서는 너무나도 짧고 잠깐의 기간입니다.

육신이 편한 대로 살아가는 자는 사망이 덮치나니 우리는 영원하신 하나님의 뜻에 맞춰 아는 자답게 살아야 겠습니다. 그래야만 육도 영도 삶이 쉽고, 구원받고 영원토록 잘 됩니다.

미련없이 영도 육도 혼도 끝장나게 살게 하옵소서. 좋은 습관을 가지게 하시고 큰 말씀처럼 크게 생각하고 크게 행하게 하옵소서.

아는 것도 행한 만큼만 알고 대하니 더욱 연구하고 기도하고 깨달아 영원토록 복의 근본자이신 하나님과 통하게 하옵소서.

새 역사의 가치를 알지 못하고, 전심으로 하지 않으면 하나님의 그 뜻을 이룰 수 없나니 하나님은 어느 시대든지 구원자를 보내 놓고, 보낸 자를 통해 뭉쳐 행하시는 것을 좋아하십니다  

새 주관권에서는 새로운 자가 정치하듯, 새 시대에는 모든 만사를 새로운 자가 합니다.

축복의 근원되시는 거룩하신 하나님 ! 안되는 것도 되게 하시는 하나님 ! 간절히 하나님의 역사하심을 주님의 이름으로 간구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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