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파날 – 복음의 시작


<이사야 40장 8절> “풀은 마르고 꽃은 시드나 우리 하나님의 말씀은 영영히 서리라 하라”

<마태복음 28장 19~20절>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찌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




◎ 선생은 10대 때부터 극적인 가난의 고통, 외롭고 쓸쓸한 환경의 고통, 못 배운 고통에 시달렸습니다.

그때부터 사람이 왜 살아야 하는지, 무엇을 하며 살아야 하는지 고민했습니다. 그렇게 9세 때부터 교회에 다니며 기도했습니다.

○ 21년 동안 고향 주변 산, 특히 대둔산에서, 그리고 고향 주변 광산 굴에서 연단 받으며 깊이 기도하고 말씀을 받았습니다.
  
산으로 가면 좁은 방보다 넓어서 좋고, 부모나 형제들이 간섭하지 않으니 의식이 안 되어 좋았습니다. 하지만 못 먹고 지낸 산속 생활, 굴속 생활은 그야말로 고통이었습니다.

비상시에나 겨우 고구마 몇 개를 먹고 굶주린 배를 채웠습니다. 대부분은 산에 있으면서 여름에는 벚나무 열매인 버찌, 야생 포도, 으름, 머루, 다래를 따 먹고, 가을에는 감을 따 먹고 살았습니다.

○ 선생은 깊이 기도하면서 창세기 1장 1절부터 하나님과 예수님께 물어보고 확인하며 성경을 자세히 읽기 시작했습니다.

하나님, 성령, 성자, 예수님은 복음의 역사를 시작하기 전에도 그렇게도 성경을 많이 읽게 하셨습니다.
  
60년 동안 성경을 깊이 읽고 기도하면서, 구시대 신앙인들이 성경을 잘못 푸니 제대로 몰라서 제대로 못 산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재림에 관한 말씀, 공중에서 주를 맞고 휴거를 이룬다는 말씀, 말세와 심판에 관한 말씀, 지상에 천국을 이룬다는 말씀을 확실히 배웠습니다.

◎ 그렇게 21년의 수도 생활을 마치고 1978년에 산에서 내려왔습니다. 예수님은 복음의 핵심 지역은 서울이라고 하면서 서울로 가라고 하셨습니다.

선생이 왜 서울로 가야 하느냐고 물으니, 예수님은 “서울은 정치·경제·학문·종교의 핵심지로서 젊은이들이 모여드는 곳이니 복음의 핵심지다. 서울에서 전해야 많은 사람이 전도된다. 복음의 핵심지가 서울이니라." 하셨습니다.

○ 복음을 전하러 출발하기 전에 하나님과 예수님은 그동안 산에서 배운 성경 강의를 모두 도표와 그림으로 자세히 그리게 하셨습니다.
  
선생이 먼저 축소시켜 그리고, 금산에서 전문 화가를 통해 크게 그려서 준비했습니다. 그때 금산을 오고 가면서 그리는 자에게 설명해 주며 제작했습니다. 그리고서 밤에 12㎞를 걸어오는 날이 많았습니다. 몇 날 동안 다 그리고, 슬라이드로도 제작하고, 차트, 도표 그림도 완성했습니다.

그때 제작비를 염려했으나 전도한 자가 일부 도와줘서 제작비를 모두 지불했습니다. 전도로 염려하던 문제가 해결됐습니다.

○ 도표 그림을 그린 화가는 선생에게 말하기를 사업 실패하고 제주도에 있다가 그 많은 곳 두고 금산으로 왔다고 하며, 이는 하나님이 자기를 금산에 보내신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는 그림 그리기 전에 선생에게 하나하나 설명을 듣고는 “너무 엄청나다.” 했습니다. 이 말씀을 전하면 사람들이 듣고 세계에서 선생을 알고 올 것이라고 하면서, 만일 이 위대한 말씀을 전하고도 성공 못 하면 자기가 몽둥이로 때려죽일 거라고 했습니다.

수고비 받은 것은 헌금한다고 그림 그린 값을 깎아 주면서 나에게 성공하라고 했습니다.

○ 선생은 그에게 “성공하고 돌아와 만나러 올 테니 술 먹지 마라. 그럼 병들어 죽어서 나 다시 못 본다.” 했습니다.

선생이 10년 만에 성공하고 그림값을 그에게 주려고 찾으니 그 옆집 사람이 말해 주기를 그 남자는 술 먹고 2년 전 간암으로 죽었고, 나머지 가족들도 모두 외지로 떠났다고 했습니다. 만나려고 더 찾았는데도 못 찾았습니다.

  



○ 하나님의 때가 되니, 예수님은 나를 재촉하셨습니다. “6월 1일 전에는 서울에 도착해야 한다. 시간을 맞춰야 하기 때문이다. 하루만 늦어도 성경의 예언이 이루어지지 않는다.” 하셨습니다.

○ 도표까지 그리니 복음을 전할 모든 준비가 끝났습니다. 아버지, 어머니께 서울로 복음을 전하러 간다고, 바로 떠나야 한다고 인사를 드렸습니다. 어머니는 걱정하시며 눈물을 글썽이셨습니다. 하나님, 예수님이 나를 쓰시니까 걱정 마시라고 하며 그동안 배운 말씀을 가지고 하면 잘된다고 말씀드리고 떠났습니다.

○ 그 당시에는 서울까지 가려면 시간이 걸리니 지체하지 않고 1978년 5월 24일 아침에, 이때 전도한 자 중에 금산의 청년 두 명과 같이 고향 땅을 떠났습니다.

복음이란 생명 구원의 역사, 환희의 역사이며, 기쁜 소식입니다. 복음으로 구원이 시작되니, 그 얼마나 기쁜 소식입니까.

2000년 기다린 성약 말씀을 모두 머릿속에 외우고, 이 말씀을 설명하는 그림과 차트와 도표를 짊어지고 예수님과 같이 서울로 갔습니다.
  
그렇게 기나긴 수도 생활 기간이 끝나고 인생들의 육과 영을 구원하는 복음을 들고 서울로 떠날 때, 시대 소경들에게 말씀을 전하여 눈을 떠 보게 해 주고 죽은 영혼과 육을 부활시켜 주러 가니 정말 환희의 날이었습니다.

○ 서울로 떠날 때, 같이 간 금산 청년이 천안 부근에 인삼밭과 거처할 곳이 있다고 하여 서울까지 가기 전에 그곳에서 일주일 동안 머물면서 기도하기로 했습니다.
  
장소는 충남 온양 쪽에 있는 배방산이었습니다. 일단 묵을 곳에 짐을 놓고 배방산에 들어가서 같이 간 청년들과 일주일 동안 생명을 구하기 위한 극치의 기도를 하기 시작했습니다.

○ 그곳에서 며칠 동안 기도하고 있을 때였습니다. 같이 간 청년 중 한 명은 선생과 30m 떨어진 곳에서 기도했습니다. 그 청년은 선생에게 자기가 기도하다가 환상을 봤다고 했습니다.

자기는 말씀을 전하는 것도 아니고 대체 서울에 가서 무엇을 하며 선생을 도울지 하나님께 기도하니, 예수님이 환상에 보이시며 “선생을 증거하라. 네가 들은 진리의 말씀이 엄청나다고 증거하라.” 하는 음성이 들렸다고 했습니다.
  
그러고서 환상이 보이기를, 건너편 큰 바위에 예수님이 나타나서 지팡이를 바위에 대니 용접할 때처럼 불꽃이 튀고 불이 나오면서 바위가 줄줄 녹아내렸다고 했습니다.

그때 예수님은 내게 말씀하시기를 “네가 기도하니, 그 위력을 사람 통해 계시로 보여 준 것이다.”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그에게 서울 가서 선생을 증거하라고 하셨습니다. 그는 영적인 사람이었습니다. 원래는 신앙생활하던 청년이 아니었으나 선생이 말씀을 가르쳐 주었습니다.

○ 그 후에 알고 보니, 배방산은 전국에서 독사가 많기로 유명한 곳이었습니다. 선생이 기도할 때 가끔 눈을 떠 보면 뱀들이 선생을 통해 사람의 냄새를 맡고 계속 모여들어 주위에 뱀이 우글우글했습니다. 일어나서 즉시 나오고 싶었습니다.

○ 예수님께 뱀이 너무너무 많다고 하니, 예수님은 말씀하시기를 “이와 같이 네가 나가서 복음을 전하면 사탄이 인간을 쓰고 악질적으로 너를 공격하며 막을 것이다. 그러나 네가 복음을 전하면 많은 자가 그 말씀을 듣고 전도된다. 복음을 전할 때 사탄들이 방해해도 이기고 복음을 전해라. 복음을 전하여 하나님의 역사를 펴겠다고 각오하고 멋있게 하자! 여기서 개인·민족·세계를 위해서 기도해라.” 하셨습니다.

○ 같이 기도하던 청년은 뱀들이 선생을 둘러싸 있으면서도 선생을 물지 않는 것을 보고 충격받고 “이것도 증거해야지요.” 했습니다.

선생은 그 자리에서 끝까지 기도했습니다. 기도하면서 “뱀들아, 물러가라!” 했습니다. 뱀을 손으로 때려잡지 않고 말의 능력으로 명령하며 기도하니 뱀들이 모두 쫓겨나고 사라졌습니다.
  
이같이 복음을 전할 때도 기도로 악인, 사탄을 물리쳐야 한다고 깨달았습니다.

○ 예수님은 선생에게 복음을 전할 때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도 코치해 주셨습니다.

예수님은 말씀하시기를 “사탄과 사탄에게 쓰이는 사람을 쪼개서 다루기다. 사람을 미워하지 말고 사탄을 미워해라. 사람이 말 안 듣고 악평한다고 해서 겉만 보고 악으로 대하지 마라. 복음을 전하면 사탄이 사람을 통해 결사적으로 막는다. 반드시 이를 알고 기도하고 사랑으로 대해라.” 하셨습니다.

그리고 또 말씀하시기를 “요셉이 이집트의 총리대신이 됐을 때, 양식의 기근으로 인해 수많은 사람이 요셉을 찾아와 양식을 구해 갔다. 그때 요셉은 자기를 찾아온 자들을 한 사람씩 자세히 파악하여 자기에게 고통을 주고 자기를 반대한 형제들이 왔는지 알아보았다.
    
그리고 그들을 찾았을 때는 자기 신분을 숨기고 모사를 써서 아직도 형제들이 자기를 미워하는지 확인했다. 형제들이 변화된 것을 보고 그제야 자신이 누구인지 나타냈다.
    
이 시대도 복음을 전할 때 사람들을 잘 파악하고 확인하고 분별하고 나서 오직 말씀으로 나타내야 한다." 하셨습니다.

○ 예수님은 선생이 극치의 기도를 할 때 걱정 말라 하시며, 앞으로 복음을 전할 때 어떻게 전해야 하는지 가르쳐 주시고 더욱 말씀과 성령으로 무장하게 하셨습니다.

○ 배방산에서 일주일 금식 기도를 마치고 산에서 내려오는데, 밭에서 인삼 일을 하던 같이 간 청년의 어머니가 기도하고 오는 선생과 그 청년에게 말하기를 산에서 수만 명이 소리 지르며 찬송 부르는 소리가 귀에 우렁차게 들렸는데 그 많은 분은 어디로 가고 3명만 내려오냐고 하였습니다.

그때 천군들이 우리와 함께하고 있었음을 깨닫고 힘을 받았습니다. ‘허다한 천군이 하나님을 찬양했구나. 천군 천사가 우리를 하나님이 보낸 자같이 따르는구나.’ 깨달았습니다.

○ 그리고 다시금 서울로 떠났습니다. 두 청년과 선생은 차를 타고 떠나 5월의 마지막 날에 서울에 도착했습니다. 하나님은 이렇게 역사 시작 전에 미리 도착하게 하셨습니다.




◎ 서울에 도착해서 처음에는 나와 같이 있던 한 청년의 형 집인 신대방동 교수아파트로 갔습니다. 그 집에서 자고 나니 1978년 6월 1일이었습니다.

○ 그 집에 더 오래 있으면 안 되서 떠나야 했습니다. 그날 하루 지내고 3일째 되는 날 아침에 떠나려고 했는데 그 집 자녀인 초등학생 남자아이가 열이 펄펄 나고 아팠습니다.
  
같이 간 증거자가 선생을 그 아이 어머니에게 증거하기를 선생이 기도하면 병원 가서 고치는 것보다 더 빨리, 즉시 낫는다고 했습니다. 그때 아이가 아파서 뒹굴며 소리치니 아이 엄마가 선생의 치유 능력을 믿고 기도해 달라고 했습니다.
  
기도해 주니, 아이는 금방 안 아프다고 했습니다. 그러니 그 청년의 형수가 자기 아들이 좋아진 것을 보고 기뻐하며  “하나님이 정말 계시네요!” 했습니다.
  
선생이 성약 복음을 전하러 서울에 가서 일어난 첫 번째 표적이었습니다.

아이는 안 아프니 좋아서 기뻐하며 웃었습니다. 이 아이 삼촌이자 선생 증거자가 선생보고 엄청나다고 했습니다. 선생은 그 아이에게 너도 하나님을 믿으라고 말해 주며 “네가 너를 두고 기도해도 낫는다. 급할 때 기도해라.” 했습니다.

아이를 치료해 주고, 이로 인해 3일 정도 그 집에 머무를 수 있었습니다. 이같이 하나님, 성령님, 성자와 예수님께서 표적을 일으키셨습니다.

○ 그럼에도 또 하나님과 성령님이 인도하시는 대로 떠나야 하는 입장이 되었습니다. 결국 삼각산 기도원으로 가서 집회에 참석하고 여러 사람을 만났습니다.
  
병든 자, 각종 고통이 있는 자들을 위해 기도해서 그 고통에서 풀어 주었습니다. 그 후에 삼각산의 감람산 기도원에 가서 기도하며 청소도 해 주고 밥도 먹으면서 지내다가 본격적으로 전도하며 택한 자, 일할 자들을 찾았습니다.

○ 낮에는 전도하러 다니더라도 거할 곳은 필요하니 삼각산 주변 바위 밑에 한 평만 하게 비닐 천막을 쳐 놓고 지냈습니다.

○ 이때 어려움을 못 견디고 같이 서울에 온 두 명의 청년이 집으로 가겠다고 하면서 눈치를 보았습니다. “선생님과 같이 있다가는 같이 굶어 고생하겠으니 우리는 내려가 경제 펴고 다시 오겠습니다.” 했습니다.
  
이에 선생이 “너희 가면 못 와.” 하니, 꼭 오겠다고 하고 내려갔습니다. 선생은 ‘내가 누군지 모르는 자들이구나.’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못 왔습니다. 47년 동안 안 왔습니다. 고로 이 길은 고생돼도 처음부터 끝까지 계속 가야 하는 길입니다.

○ 이때부터 선생은 혼자 다니기 시작했습니다. 이때 삼각산 집회에 참석했다가 알게 된 서울 낙원교회 ○○○ 장로가 선생에게 말씀을 조금 들었는데, 선생의 사정을 알고 집에서 쌀을 조금씩 가져왔습니다.
  
이를 가지고 산에서 밥을 해 먹었습니다. 때로는 며칠에 한 번씩 부식도 가져다주어서 먹었습니다. 하나님은 엘리야 때 같이 그때 상황대로 선생을 도울 자를 보내서 도와주셨습니다.

그리고 또 한 명이 있었는데, 불교에 다니다가 기독교로 개종 중인 ○○○라는 자가 선생이 기도 많이 하여 영력이 강하다고 좋아하며 가끔 식사를 사 주었습니다.

이 두 명이 틈틈이 선생을 도우면서 선생에게 같이 교회를 개척하자고 했습니다. 선생은 당장 있을 교회가 없으니 어렵다고 하였습니다.

○ 어느 날 ○○○ 씨가 선생을 찾아와서, 작은 방 교회라도 운영해 보자고 했습니다. 선생 옆에 오면 몸이 뜨겁고 성령의 역사가 강하여 꼭 선생을 데리고 교회를 개척하고 싶다고 하며, 우선 환자들을 모아 고쳐 주면서 시작하자고 했습니다.

○ 그러던 어느 날, 기도원에 머물면서 집회 기간 7일을 보내고 있을 때였습니다. 이 기도원에 행당동에 사는 한 집사가 귀신에 시달리는 딸과 같이 기도하러 왔습니다. 그 집사님이 기도원 성전에서 어떻게 지내냐고 하며 자기 집에 가자고 졸라서 또 그 집으로 따라가게 되었습니다.

○ 그렇게 그곳에 거하면서 소개해 주는 아픈 자들에게 기도해 주고, 은혜집회를 해 주며 말씀을 전해 주었습니다. 그 집에 며칠 머물며 그 딸에 붙은 귀신을 쫓아내니 딸이 건강해졌습니다. 그래서 다시 삼각산에 왔습니다.

○ 그 뒤 다시 감람산 기도원 쪽으로 가서 기도했습니다. 그러다 불교 남자 신자인 ○○○ 씨를 또 만났습니다. 그는 불교에 30년 이상 있었지만 인생 문제가 해결이 안 되어 부흥집회에 또 참석한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능력자를 만나면 신앙생활도 하고, 자기 땅이 있으니 거기에 교회도 짓고 싶다고 했습니다. 예수님이 그를 만나게 하신 것입니다. 그는 원남동에 방을 얻어 주었습니다. 그곳을 다섯 달 운영하며 수시로 식사를 사 주었으나, 전도가 잘 안 되었습니다.
  
그를 통해 도움받았지만, 얼마 안 가 그가 방을 빼서 선생은 또다시 혼자 돌아다니면서 말씀을 전했습니다.

○ 그러던 어느 날, 자기 딸이 아파 기도해 주었던 전에 연결된 자가 자기 딸이 선생 기도로 나아지자 다른 환자를 선생에게 연결했습니다. 암 환자인데, 그도 선생 기도를 받고 나았습니다.

그는 기도 받고 고통이 없어졌으니 감사헌금을 하고 싶다고 하며 천만 원을 줬습니다. 그것을 가지고 당시 성북구 미아리 쪽으로 가서 한동안 지냈습니다. 그때 천만 원은 거금이었습니다. 병이 나아서 감사하다고 준 것입니다.

○ 그 돈으로 미아리 쪽에 있다가 남가좌동에 가서 40~50평 정도 되는 큰 홀을 전세로 얻어서 개척했습니다. 이때도 많은 아픈 자와 미친 사람을 기도로 고쳐 주었습니다. 남가좌동으로 이동하여 개척하기 시작하고 2개월이 되자 남가좌동 교회 교인이 50명까지 되었습니다.

○ 이때 어머니에게서 선생이 베트남에서 돌아와 지은 함석집을 팔고 서울 큰형한테 가려 한다고 연락이 왔습니다. 어머니는 “이사 비용과 생활비가 있어야 해서 집을 팔려 한다. 동네 사람이 35만 원 준다고 하니 그에게 팔려고 한다.” 하셨습니다.
  
선생은 어머니께 “그 집은 내가 지었으니 내가 써야 되요.” 했습니다. 이에 어머니는 “그러면 네가 사야지. 3일 안에 돈 가지고 오면 네게 팔고, 아니면 동네 아저씨에게 팔 수밖에 없어.” 하셨습니다.

○ 가슴이 출렁하여 밤새워 기도했습니다. 베트남에 갔다 와서 하나님, 예수님이 지어 주신 이 집을 어머니가 판다고 하니 제발 사 달라고 혼자 철야하며 기도했습니다.

그때, 새벽에 전화가 와서 받아 보니 한 남자 교인이 선생이 보고 싶다고 꼭 오겠다고 하기에 그럼 오라고 했습니다. 그가 와서 선생의 사연을 듣더니 자기가 집을 사 주겠다고 했습니다. 그가 400만 원을 주었으나, 집값 35만 원과 차비와 어머니께 드릴 선물비 3만 원 해서 38만 원만 받았습니다. 이렇게 극적으로 석막리 집을 샀습니다.

○ 하나님, 성령, 성자, 예수님은 즉시 기도를 들어 주셨습니다. 최고 큰 기도를 하고, 최고 큰일이 해결되었습니다. 그로 인해 월명동 핵심지 200평의 땅을 사고서 이후 계속 뜻있는 곳의 땅을 사는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이것 못 샀으면 월명동 골짜기를 다 뺏겼을 것입니다. 월명동 핵심지를 차지하게 된 것입니다.

○ 그러던 어느 날, 남가좌동 교회의 교인인 한 아주머니가 자기 딸과 결혼한 사위에게 교회를 주자고 했습니다. 결국 선생은 돈 50만 원을 받고 그 교회에서 양보하고 나오게 됐습니다.
  
그때는 아브라함이 조카에게 양보하고 소돔 땅에서 가나안으로 나오는 격이었습니다. 가는 길이 갈라진 것입니다.




○ 남가좌동에서 혼자 나와서 신촌 기차역 근처, 이화여대 앞 한복집의 작은 문간방을 30만 원 월세로 어렵게 구했습니다. 신촌에서 몇 달 정도 말씀을 가르치며 4명을 전도했습니다.

○ 때가 되어 이 신촌 방에서도 옮겨야 했습니다. 하나님은 삼각산에서 만난 불교 신자를 통하여 사람들이 안 쓰는 삼선교 양로원 건물에 자리 잡게 하셨습니다

○ 이사한 삼선교 건물은 200평이나 되고, 방은 30개 가까이 있었는데, 제대로 쓸 만한 곳이 하나도 없었습니다. 일제 강점기에 지은 거라 전체가 오래돼서 유리창도 거의 깨지고, 문도 낡고, 벽도 다 무너져 가고 있었습니다. 주변은 잡초에 둘러싸여 동네 개들이 모여 배설물을 싸고 가는 장소가 되었습니다.

습기 차서 곰팡이가 핀 방이라도 “그래도 갈 곳 없는데, 이것도 전능자 하나님이 예비해 주신 집이다.” 하며 천국같이 느껴졌습니다. 우선 방 한 개만 주위를 청소하고 예배 드리는 장소로 쓰기로 했습니다. 계속 청소하고 쓰레기를 한 트럭이나 모아 땅에 묻고 하여 겨우 어느 정도 깨끗해졌습니다. 삼선교에서 섭리사 초창기 전도를 본격화하기 시작했습니다.

○ 먹을 것이 없어 라면 한 개 끓여서 4명이 먹고 살아도 좋아하고 기뻐하며 늘 힘차게 하나님의 일을 행했습니다. 처음에는 밥이 없어 아예 못 먹었습니다.
  
밥도 안 먹고 잠도 안 자 가면서 밤낮으로 15일씩 강의를 연속하기도 했습니다. ‘앞날에 잘된다.’ 함을 절대 믿고 희망에 차서 움직였습니다. 늘 하나님께 감사하고 사랑하며 행했습니다.

○ 그때부터 생명이 몰려들었습니다. 삼선교 그 낡은 건물에 밤낮으로 젊은 대학생 엘리트 사람들이 밀려온 것은 하나님의 표적이었습니다. 방이 좁으니 벽장 속에 들어가서 강의를 하기도 했습니다.

한번은 선생이 한 팀을 강의하고 있었고, 다른 팀의 강의를 해야 하는데 방에 앉을 곳이 없어서 너비 70㎝, 길이 1.5m 되는 벽장에서 강사와 75㎏ 넘는 여학생과 다른 학생까지 총 3명이 들어가서 공부하고 있었습니다.
  
덩치 큰 여학생이 웅크리고 있다가 숨을 크게 내쉬자 몸이 커져 벽장의 미닫이문이 튕겨 위쪽 벽장에서 아래쪽 방으로 떨어졌습니다. 모두 방에서 공부하다가 간 떨어지게 놀랐습니다. 그 여학생이 민망해하며 살 빼겠다고 하기에 “괜찮다. 살 빼지 말고 열심히 해. 밤낮 성경 배우고 잠 못 자면 저절로 살이 빠진다.” 했습니다.

○ 그때 강의를 들은 자들은 “예수님이 다시 오셨다.” “우리가 기다린 자를 만났다.” 하며 놀라 쓰러지기도 했습니다. 거기에서 성약 복음의 역사가 일어났고, 역사가 점점 커지기 시작했습니다.

○ 그때 말씀 듣고 선생 깨닫고 통과식 하는 날에는 위대한 최고 천 년 말씀을 모두 절실히 깨닫고 놀라 쓰러지고 기절하기도 하였습니다. 선생이 직접 강의를 하니 그러했습니다.
  
신약에서 2000년간 못 푼 말씀을 풀어 주니 영으로도 혼으로도 육으로도 모든 의문의 문제가 성경 베드로후서 3장 8~13절 말씀처럼 풀어졌기 때문입니다.

(벧후 3:8~13) “사랑하는 자들아 주께는 하루가 천년 같고 천년이 하루 같은 이 한가지를 잊지 말라 주의 약속은 어떤이의 더디다고 생각하는 것 같이 더딘 것이 아니라 오직 너희를 대하여 오래 참으사 아무도 멸망치 않고 다 회개하기에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 그러나 주의 날이 도적 같이 오리니 그 날에는 하늘이 큰 소리로 떠나 가고 체질이 뜨거운 불에 풀어지고 땅과 그 중에 있는 모든 일이 드러나리로다 이 모든 것이 이렇게 풀어지리니 너희가 어떠한 사람이 되어야 마땅하뇨 거룩한 행실과 경건함으로 하나님의 날이 임하기를 바라보고 간절히 사모하라 그 날에 하늘이 불에 타서 풀어지고 체질이 뜨거운 불에 녹아지려니와 우리는 그의 약속대로 의의 거하는바 새 하늘과 새 땅을 바라보도다”

모두 이같이 제대로 가르쳐야 합니다. 그래야 돌 같은 무지의 인식관과 마음이 녹아집니다.

○ 시대의 생명들은 몰려오는데 삼선교에서는 더 이상 할 수가 없었습니다. 건물이 다른 자에게 넘어갔다고 겨울에 나가라 하여 봄까지 견디고 서울 시내로 나오게 되었고, 그 후 한동안 자리를 옮겨 다니며 섭리사를 폈습니다.




○ 수십 명 전도하고서 때가 되어서 매주 서울 혜화동에 있는 가톨릭회관을 빌려 주일예배를 드렸습니다. 그러다가 명동의 태멘 소극장을 썼습니다.
  
그 뒤에 이대 여학생이 집을 빌려 주어 독산동 그 집을 교회로 쓰다가, 삼성동 영동 지하실 교회로 옮겨 210명이 예배 드렸습니다. 그리고 구기동 세검정 교회에서 1,000여 명으로 부흥했습니다.

이때, 서울로 공부하러 온 학생들이 많이 전도되면서 그들이 방학이 되면 자기 지역으로 돌아가서 지방 교회를 개척하여 선생과 함께 전국에 교회들을 세워 나갔습니다.
    
결국 하나님, 성령, 성자, 예수님이 함께하시어 전국 8개 도시에 교회가 만들어졌고, 선생은 전국을 계속 다니면서 말씀 전하며 전도에 주력하였습니다. 이제 서울뿐 아니라 전국을 누비며 복음을 전하게 되었습니다. 또, 해외는 유학생들을 통해서 교회를 세웠고, 한국에서 선교사를 보내기도 했습니다. 이후 잠원동 영동교회로 옮겨 가서 계속 전도했습니다.

○ 그다음에 낙성대교회로 가서 4층 본당과 3층을 사용하였는데, 의자 옆 통로와 각 층의 복도까지 꽉 차서 예배를 드리게 되었습니다.
  
이때 교회가 1,500여 명으로 시작해 크게 성장하였습니다. 낙성대교회 때는 주일마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4부 예배를 드렸고, 초신자 예배를 따로 분리해서 드렸습니다.

○ 낙성대교회에서는 1991년도까지 있으면서 섭리사를 다방면으로 부흥시켰습니다. 그러다 섭리사는 점점 더 커져서 1990년대 초에 2만여 명에 이르렀습니다. 한꺼번에 다 모일 수 있는 장소가 없었습니다.
  
월명동을 조금씩 개발하면서 쓰고, 큰 장소를 빌려 쓰기도 하였습니다. 당시 대전공설운동장에서 체육대회를 할 때 2만여 명이 관중석을 채우고 행사를 하였으니, 낙성대교회로 옮긴 이후 약 5년간 15배 이상 부흥한 것입니다.

○ 더 이상 갈 곳이 없게 되자 마지막에 하나님은 월명동의 뜻을 가르쳐 주시고 그 필요성을 느끼게 하시어 월명동을 개발하기 시작했습니다.

○ 이때 핍박이 일어났습니다. 성경을 공부하던 학생들이 이단이라고 소문내기도 했습니다. 그럴수록 더 전도하였습니다. 그러면서 월명동을 조금씩 개발했습니다.

하나님이 이전부터 범석 목사를 보내어 10여 명이 개발하다, 후에는 30명이 개발하게 되었습니다. 선생이 다니면서 코치해 주었습니다.

○ 선생은 처음에 한때 ‘많은 사람이 몸과 마음을 단련할 수 있는 수련원으로 만들어야겠다.’라고만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말씀하시기를, “하나님 보낸 자가 난 곳에 하나님의 전을 지어야 하지 않겠냐.” 하셨습니다.
  
그리고 시대 복음이 시작된 이곳 ‘알파의 장소’에 이같이 하나님의 자연성전을 만들고 개발하게 하셨습니다.



간절한 기도 70 ◇$☆ for 22


하나님은 끝에 약속한 축복을 주시니 끝까지 약속을 지키며 기다려야 됩니다.

기도의 중요성을 깨달으며 말씀을 통해 우리 갈 길을 빍히시는 주님께 깊은 감사드립니다. 사람들을 잘 파악하고 확인하고 분별하게 하시고 오직 말씀으로 중심을 잡게 하옵소서.

최고 큰 기도를 해야 최고 큰일이 해결되니 기도와 말씀과 실행으로 모든 문제를 해결하고 기성의 돌 같은 무지의 인식관과 마음이 녹아지게 하옵소서.

약속을 지키시는 하나님을 믿고 의지하며 사랑하는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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