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로 인하여 실족하지 말아라


<누가복음 7장 23절> “누구든지 나를 인하여 실족하지 아니하는 자는 복이 있도다 하시니라”



◇ <눅 7:18-22> “요한의 제자들이 이 모든 일을 그에게 고하니 요한이 그 제자 중 둘을 불러 주께 보내어 가로되

오실 그이가 당신이오니이까 우리가 다른이를 기다리오리이까 하라 하매

저희가 예수께 나아가 가로되 세례 요한이 우리를 보내어 당신께 말하기를 오실 그이가 당신이오니이까 우리가 다른이를 기다리오리이까 하더이다 하니

마침 그 시에 예수께서 질병과 고통과 및 악귀 들린 자를 많이 고치시며
또 많은 소경을 보게 하신지라

대답하여 가라사대 너희가 가서 보고 들은 것을 요한에게 고하되

소경이 보며 앉은뱅이가 걸으며 문둥이가 깨끗함을 받으며 귀머거리가 들으며 죽은 자가 살아나며 가난한 자에게 복음이 전파된다 하라”

<세례요한>은 헤롯왕의 이성 문제를 지적하여 옥에 갇히게 되었습니다. <세례요한>이 옥에 갇히기 전, 주를 증거할 때는 예수님에 대해 실족하지 않았습니다. 옥에서 고통을 받으니 그로 인해 예수님에 대해 실망하고 실족했습니다. 그래서 자기 제자들을 예수님께 보내어 오실 자, 메시아가 당신이냐고 제자들을 통해 물었습니다.

이를 두고 예수님은 말씀하시길 “구약에서 메시아가 오면 행한다고 했던 것을 하고 있다고 전해라. 앉은뱅이와 문둥이와 귀머거리 등 각종 병을 고치고, 신앙의 불구자와 눈먼 자를 다 고치고 있다고 전해라. 메시아가 오면 한다고 한 것을 지금 다 하고 있다고 요한에게 전해라. 그동안 요한은 내 앞에 와서 뭘 외치고 다녔냐.” 하셨습니다.

◇ <증거자>가 핵을 알고 전해야지, 분명히 모르고 증거하면 자신이 증거자인데도 주를 제대로 모르니 실망합니다.
  
목숨을 걸고 외쳐도 주가 뭘 하러 왔는지 알고 외쳐야 됩니다. 구약에서 ‘그가 오면 가난한 자, 병든 자를 고쳐 준다.’고 하였습니다.

예수님은 오셔서 그 시대 신앙의 소경들, 진리의 소경들을 눈뜨게 해 주시고 각종 신앙의 병들을 치료해 주셨습니다.

◇ 신약 때 예수님은 말씀하시기를, 다시 올 때는 신랑으로 와서 예비된 신부를 맞고 하나님의 뜻을 편다고 하였습니다(마 25:1-10).

새 시대에 오는 자는 구시대 하나님의 약속을 이루러 와서 그 일들을 하나님과 함께 행합니다. 그런데 모르니 실망하고 불신도 합니다. 신앙의 소경들은 눈을 못 떠서 넘어지고 낙심하고 실족하고 실종됐습니다.

그렇게 말씀으로 치료해 줬는데도 자기 사고의 병을 못 고쳤습니다. 육신의 병도 고쳐 줬건만, 안타까운 운명이 됐습니다.

◇ 하나님이 보낸 자는 스스로 함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그를 통해 행하십니다. 어떤 것은 행하고도 본인이 왜 그렇게 했는지 모르다가 이후에 하나님이 깨닫게 해 주십니다.

전능자만 행하실 때 알고, 어떤 것은 보낸 자에게도 지난 후에 알려 주시고, 행한 후 그제야 가르쳐 주십니다.

<야심작돌>도 처음에는 왜 그 돌을 <야심작돌>이라 하는지 모르다가 24년 후에야 알게 되었습니다. 야심작을 깨끗이 정리하니, 하나님이 그제야 <독수리 형상>이라고 깨우쳐 주셔서 알았습니다. ‘아~ 하나님의 상징, 독수리 형상이 있어서, 이래서 <야심작돌>이구나.’ 하고 비로소 온전하게 깨닫게 되었습니다.

이 시대도 깨끗이 하니 그가 어떤 자인지, 왜 그인지 가르쳐 주어서 섭리사 45년 만에 더욱 알게 했습니다.



◇ <구약 모세 때>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이 보낸 자, 모세를 원망하고 그와 다투고 배신하고 불신하였지, 감히 하나님을 불신하지는 않았습니다.

항상 어느 시대든지 하나님이 보낸 구원자를 불신했습니다. 그를 보내신 자, 하나님은 이미 믿고 왔기에 불신하지 않고 그가 보낸 자를 불신합니다.

하나님은 그를 대하는 대로, 그것을 표준으로 두고 심판하십니다. 예수님도 예수님이 보낸 자를 대하는 대로 대하십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이 보낸 자를 쓰고 뜻을 펴셨습니다. 고로, 보낸 자를 불신하고 그와 싸우는 것은 하나님을 그리 대한 것으로 판단하고 그들을 심판하셨습니다. 보낸 자를 불신하는 것은 그를 보내신 자를 불신하는 것으로 보고 심판하셨습니다.

<신약 예수님 때>도 구시대 종교 율법주의자들이 감히 하나님을 불신하지는 않았고 하나님이 보낸 자, 예수님을 불신했습니다.
  
그들이 하나님을 잘 믿었어도, 하나님은 모두 심판하셨습니다. ‘하나님이 보낸 자를 불신함’은 곧, ‘하나님을 불신함’이었기 때문입니다.

<이 시대>도 그러합니다. ‘보냄 받은 자 불신’은 ‘그를 보내신 자 불신’입니다. 예수님은 이미 믿고 왔기에 불신 안 합니다. 항상 자신들이 ‘하나님, 성령, 예수님’은 절대 믿고 살았기에 감히 불신을 안 합니다.
  
그런데 하나님, 성령, 예수님이 보낸 자는 불신합니다. 그를 불신하면 아무리 하나님과 예수님과 성령을 잘 믿어도 뜻을 펼 수 없습니다.

‘보냄 받은 자’를 불신함은 ‘그를 보내신 자’를 불신함이기 때문입니다. 고로 하나님도, 예수님도, 성령도 그들을 통해서는 뜻을 못 펴십니다.
  
◇ 섭리사에서도 <선생>은 믿습니다. 그러나 선생이 보낸 자를 불신합니다. 그럼 보낸 자를 통해 뜻을 못 폅니다. 고로 심정이 상합니다. 무지 속에 상극입니다. 결국 끊어집니다.

◇ 행한 대로, 이같이 심판을 이미 받아 왔습니다. 항상 ‘심판의 기준’은 보낸 자입니다. 그를 표준하여 심판하십니다. 그를 통해 구원역사를 하시기 때문입니다.

◇ 여러분들도 그 심정을 겪어 봤지요? 자기가 보낸 자는 제2의 자기입니다. 그를 통해 일하려고 하는데, 그를 몰라주면 못 합니다. 그럼 자기를 불신한 것으로 보고 대합니다.




어느 시대나 하나님이 보낸 자를 대하는 대로 대해 주셨습니다. 하나님은 보낸 자를 자기 육으로 쓰십니다. 그 육을 통해 하나님이 계획한, 약속한 뜻을 펴시기 때문입니다.

시대 표상자, 보낸 자에게 고통을 주면, 그 민족도 그 행위대로 받습니다. 하나님이 고통을 주고, 그 수고가 헛되게 하십니다.

신약 때 예수님을 대한 대로, 그 행한 대로 지금까지 수천 년을 갚아 주고 계십니다. 전능자는 말없이 선포하시고 그 대가를, 핏값을 계속 받게 하십니다. 예수님이 유대 종교인들에게 “아벨 이후 사가랴의 핏값까지 너희가 감당해라.” 했습니다.

    (마 23:35) “그러므로 의인 아벨의 피로부터 성전과 제단 사이에서 너희가 죽인 바라갸의 아들 사가랴의 피까지 땅 위에서 흘린 의로운 피가 다 너희에게 돌아 가리라”

어느 때까지냐고 하니, 하나님은 “보낸 자를 시인하고 돌아와서 용서받고, 그를 증거하면서 의를 행할 때까지다.”라고 하셨습니다.

◇ 하나님, 성령님, 성자는 전지전능하시사, 환난이 일어나서 절대 불가능한 가운데서도 그 사랑하는 자에게 기회를 주셨습니다. 또 어떤 것은 앞날을 이미 아시고 그 전에 기회를 주셨습니다. 환난이 일어나기 4년 전, 3년 전에 기회를 주셨고, 어떤 것은 환난 5년 전에 주셨습니다. 그때 행하게 하셨습니다.

한 자는 보람을 느끼고 삽니다. 지나고 보면 그때가 소원했던 것의 기회였음을 깨닫게 되고 감사하고 기뻐하게 됩니다. 고로, 지난날을 잊으면 안 됩니다. 주실 때는 은밀하게 행하시니, 받는 자도 모릅니다. 환난이 일어나서 당할 때는 못 주니 환난 전에 이미 아시고 주셨음을, 그 후에 스스로 깨닫게 하십니다.

◇ 하나님은 전지전능한 것이 수만 가지인데, 그중의 하나가 방금 말한 대로 사랑하는 자들에게 환난 전에 기회를 줘서 행하게 은혜를 베푸셨다는 것입니다. 행한 자는 환난 날에도 그로 인해 힘을 받고 기뻐하며 삽니다.

◇ 과거 그때가 기회였습니다. 하나님은 일점일획까지 하실 것을 다 하시고 역사를 펴 가십니다. 깨닫는 자는 깨닫고 감격하며, 이를 행하신 전능자 하나님, 성령, 성자께 그리고 예수님께 감사해야 합니다.

◇ 깨닫고 보면 그때가 기회였습니다. 월명동의 돌과 소나무들, 숨겨 둔 희귀종도 눈보라 치는 때라도 때가 되니 성령이 감동을 주어서 그 장소에 가게 하여 보게 하셨습니다. 기회의 때에 깨닫게 하고, 알게 해 주신 것입니다. 표상자를 통해 가르쳐 주셨습니다. 하나님이 주신 복을 행하게 하셨습니다.

의인들에게는 그때그때마다 행할 것을 행하게 하시고, 그 후 환난 날에 깨닫고 감사 감격하며 이를 기적으로 행하게 하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합니다. 그러므로 깨닫는 것이 은혜입니다.
  


◇ 새벽, 아침 전에 이 나무를 보이고 깨닫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이 150~200년 동안 만드셨습니다. 둥치 둘레 110cm, 뿌리 둘레 120cm입니다.
  
사람도 이와 같이 기회의 때에 숨긴 자를 깨닫게 하십니다. 하나님은 은밀히 행하십니다. 이런 솔 같은 희귀종 인생들도 그러합니다.

이 나무, 모두 악평한 나무입니다. 이 나무로 인해 모두 서로 욕도 하고 “왜 안 덮냐. 얼어 죽는다.” “넘어간다. 베어 버려라.” 했습니다. 무지한 자들이 그리 말했습니다. 흙으로 덮으면 하나님 목적을 파기하는 것입니다. 오직 하나님만 아시고 보낸 자 통해 밝히시니, 오직 기도만 해야 됩니다.

위치는 ‘하나님 궁전 청기와집 뒤’이고, 형상은 ‘개구리 자세’입니다.  

◇ 하나님이 주를 통해 행하신 모든 것을 뺏기지 않으면 사랑이 영원히 갑니다. 사탄은 꾐이 능력입니다. 사람 통해 꾀고, 직접 꾀기도 합니다. 사기꾼도 손해 가게 하는 자라 꾑니다.

꾐에 넘어가 뺏기면 뺏긴 날부터 상실한 것입니다.
  
저마다 하나님의 적, 천적 <사탄>을 멸해야 ‘천국’이 됩니다.  <천국>은 ‘사탄’을 다 멸하고 가는 곳입니다.

  <사탄, 인(人)사탄>과 모두 싸워 이겨야 ‘천국의 삶’을 살게 됩니다. 예수님이 오신 것은 사탄을 멸하려 함이라고 했습니다.

    (요한1서 3:8) “죄를 짓는 자는 마귀에게 속하나니 마귀는 처음부터 범죄함이니라 하나님의 아들이 나타나신 것은 마귀의 일을 멸하려 하심이니라”




◇ 자기의 <육성>은 ‘성령의 검, 말씀의 검’으로 스스로 자르고, 기도함으로써 <영성>을 강하게 가져야 합니다.
  
정신과 생각을 온전히 하고 주와 일체 되어야 선악을 구분하고, 하나님의 이 시대 역사 편에 서서 온전하게 합니다.

◇ <세례요한>을 보면, 주를 증거하고도 이후에 헤롯왕의 이성 문제를 지적하는 무지한 죄를 범했습니다. 예수님을 계속 증거해야 했습니다. 그 실수로 옥에 갇혀서 고통받으니, 예수님에 대해 실족했습니다. 실수하고, 실족하고, 실망했습니다.

사람들은 잘 증거하고 믿고 좋아하며 좇다가도 환난 때 고통받게 되거나, 일이 잘 안되거나 자기 주관대로 안 되면, 자기가 좇던 자에게 실망하고, 불신하고 악평도 합니다. 어느 때는 세례요한같이 실망도 하고 실족도 합니다.

◇ <예수님>은 자기를 믿는 자들과 모든 사람들에게 실망을 안 시키려고 아픈 자, 약한 자, 모르는 자, 섭섭함을 타는 자 등 모두를 마음과 뜻과 목숨 다해 대해 주셨습니다.
  
섬겨 주고, 위해 주고, 메시아 만왕의 왕이 전심을 다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님께 실망한 것은 <자기 책임>입니다.

하나님이 보내는 자는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야 하기에, 고통받는 자들뿐 아니라 모두에게 해 줄 만큼 다 해 줍니다. 위해 주고, 섬겨 주고, 마음과 뜻과 목숨을 다해 해 줬습니다.
  
그래도 저마다 목숨 걸고 행치 않으니 자기 주관대로 안 된다고 실망하고 실족한 것입니다. 기대에 어긋난다고 실망한 것입니다.

◇ 구약에서도, 신약에서도, 그리고 현재까지 하나님이 보낸 자에 대해 실족한 자들은 스스로 실망하고 운명이 기울어 패한 세계로 갔습니다. 실족하지 않고 절대 믿음에 섰던 자들은 하나님의 뜻을 이루고 승리하였습니다.

- 구약의 <노아>는 하나님에 대해 실족하지 않으니 하나님께 은혜를 입었습니다. <노아>는 의인이요, 당대에 완전한 자로서 하나님과 동행하였습니다.

(창 6:8-9) “노아는 여호와께 은혜를 입었더라 이것이 노아의 족보니라 노아는 의인이요 당대에 완전한 자라 그는 하나님과 동행하였으며”

양심 심판, 홍수 심판 때 자기와 식구들을 구했습니다. 따라가는 자는 절대 실망하지 말아야 합니다.
  
노아도 왜 실망스럽지 않았겠습니까. 불순종한 자들을 심판하는 기간에 여덟 식구가 배 안에서 얼마나 고생했겠습니까. 노아는 완전한 자인데 그도 죽지만 않았지, 같이 고생했습니다.
  
- 구약의 선지자 <엘리야>는 각종 고통과 억울함을 당하는 중에도 하나님에 대해 실족하지 않고 행하니, 우상 숭배자들과의 대결에서 모두 다 이겼습니다.

- <모세 때 애굽에서 나온 자들>은 모세를 보고 실망하고 실족했습니다. 자기들의 잘못을 모세에게 돌렸습니다. 그리고 원망했습니다. 고로, 하나님의 약속을 못 이루고 오히려 심판받았습니다.

모세를 통해 1차로는 애굽 종의 몸에서 벗어나는 구원을 받고, 2차로는 가나안 복지로 들어가는 구원을 받아야 했는데, 그것을 못 이뤘습니다.
  
모세가 어찌 다 해 줍니까. 인생, 자기 삶은 자기 책임입니다. 사명자는 하나님의 말씀만 전해 주면 됩니다.

- <요셉>은 고통받고 억울함을 받아도 하나님에 대해 실족하지 않고 절대 믿고 옥에서 긴긴 세월을 보냈습니다. 하나님이 옥에서도 계속 축복해 주어 거기서 만날 자인 ‘왕의 술 맡은 관원장’을 만나고 하나님의 뜻을 이뤘습니다. 옥에서 나와 왕 앞에 인도를 받고 그 시대 왕의 꿈을 풀어 주고 애굽의 총리가 되었습니다.

- <다윗 왕>도 그렇게도 사울 왕에게 고통을 받아도 하나님께 실망하지 않고, 실족하지 않았습니다. 결국 사울은 죽고 하나님은 다윗을 계속 축복해 주셔서 40년간 이스라엘 민족을 다스렸습니다.

- 구약의 <선지자들> 모두 절대 환난 중에도 하나님께 실망하지 않고 믿고 행하여서 승리했습니다.

- 예수님 때도 <제자들>은 예수님이 그렇게 고통받는 것을 봤어도, 자기들이 순교하기 직전까지도 실족하지 않고 예수님을 절대 메시아로 믿고 구원받았습니다. 그리하여 신약 2000년 역사를 당세에 완전하게 해 놓았습니다.

- <이 시대>도 모두 선생으로 인해 절대 실족하지 말고 절대 하나님, 예수님, 성령께도 서운해 말고 어떤 일에도 실족하거나 낙심하지 말아야 합니다.

하나님은 때에 맞춰 다 해 주십니다. 하나님 자신의 뜻을 펴는데 안 하시겠습니까. 실족하지 말아야 계속 새 역사를 축복해 주십니다.



<2024년 3월 25일 월요일 새벽 잠언>


1. 하나님께 40년, 400년, 4000년 이같이 모두 각종 예정된 것을 두고 굳이 기도할 필요가 없지 않느냐고 물었다.

2. 선생이 베트남 전쟁터에 가는 것은 하나님의 뜻이 있어 예정됐는데 안 가려고 기도했다. 필요 없는 기도를 했던 것이다. 하지만 그때 기도를 했기 때문에 하나님의 깊은 뜻을 깨닫게 되었다. 가는 것이 예정되었는데 기도하니 “너는 가야 한다. 조건을 세워줘야 한다. 그래야 평화가 온다.” 하고 깨닫게 해 주셨다. “싸우는 두 사람이 있는데 싸움을 안 말리면 두 사람이 계속 싸우다 죽으니 어서 말리러 가야 한다.”고 절실하게 깨닫게 하여 기꺼이 기뻐하며 가게 됐다. 선생이 이같이 하니 동료들도 같이 기뻐하며 갔다.

3. 이와 같이 예정돼서 가야만 하는 것이라 가기 싫다고 기도한 것은 필요 없는 기도였지만, 그 기도로 인해 하나님이 뜻을 가르쳐 주어서 기뻐하며 가게 되었다. 두 번째 갈 때는 가야 할 입장이 되어서 지원해서 또 갔다. 그 후에 결국 바로 40년 전쟁이 끝났다.

4. 이와 같이 이미 하나님이 예정하신 것도, ‘기도’해야 그 뜻을 제대로 깨닫는다. 고로 하나님의 마음을 알고 행하니 억지로나 싫어서 행치 않게 된다. 또 형제들을 위해서 고통을 받고 평화롭게 구해 주니 기쁜 것이다.

5. 예정됐어도 기도가 필요하다. 고로 ‘예정됐는데 뭣 하러 기도하냐?’ 하지 말고, 예정됐어도 기도하여 하나님이 왜 예정하셨는지를 깨달아라. ‘기도할 것 없다. 잘되게 기도할 필요 없다.’ 하지 말고 기도하여라. 40년, 400년, 4000년 형벌과 고통 기간이 예정됐어도 고통을 받으면서 기도하여 신앙의 구원도 받고, 나라도 존재하게 됐던 것이다. 하나님, 성령, 성자, 주가 동행하며 같이 행해야 된다.

6. 하나님은 예수님과 같이 자기는 필요 없지만 만인을 구원하기 위해 십자가 고통이 필요했다.

7. 자기는 모르니 하기 싫지만, 하나님은 그것을 하기 좋아하신다. 하나님 뜻을 이뤄야 되기 때문이다.

8. 사람 마음과 생각이 절대 하기 싫다 하여도, 가기 싫고 고생되어도 하나님의 뜻대로 해야만이 축복받는다. 성경에 수백 군데 나왔다.


  감사와 은혜의 삶 https://youtu.be/qQqZT9uKSEE?si=Xci0ycw9SRWflE69


하나님께 기도 찬양 영광 돌립니다~
함께 기도 49

<새 시대에 오는 자는 구시대 하나님의 약속을 이루러 와서 그 일들을 하나님과 함께 행합니다>

하나님은 보낸 자를 자기 육으로 쓰시며 그 육을 통해 하나님이 계획한, 약속한 뜻을 펴고 계십니다. 이렇게 하나님은 우리 곁에 살아 역사하고 계십니다.

귀한 말씀으로 이 시대를 역사하고 계시는 하나님은 진정 존귀하십니다. 저희도 정신과 생각을 온전히 하고 주와 일체 되어 선악을 구분하고, 하나님의 이 시대 역사 편에 서서 온전하게 자기를 잘 만들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한다고 했는데 일이 안되었어도 실족하지 않고 절대 믿음에 서면 결국은 하나님의 뜻을 이루고 승리할 줄 믿습니다.

하나님이 때에 맞춰 다 이루어 주실 줄 믿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자존심이 되게 하시고 하나님의 사랑이 되게 하옵소서.

늘 기도하게 하시고 늘 하나님 뜻을 좇아 아름답게 하늘의 신부로 개성있게 만들어지게 하옵소서. 오늘도 깊이 감사드리며 다시 오신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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