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것을 알아야 된다
<이사야 65장 17절> “보라 내가 새 하늘과 새 땅을 창조하나니 이전 것은 기억되거나 마음에 생각나지 아니할 것이라”
<갈라디아서 3장 23-25절> “믿음이 오기 전에 우리가 율법 아래 매인바 되고 계시될 믿음의 때까지 갇혔느니라 이같이 율법이 우리를 그리스도에게로 인도하는 몽학선생이 되어 우리로 하여금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다 함을 얻게 하려 함이니라 믿음이 온 후로는 우리가 몽학선생 아래 있지 아니하도다”
<로마서 10장 10절> “사람이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르느니라”
‘때’로 보면 이 시대는 신약 2000년이 지나서 새롭게 시작한 ‘성약시대’입니다. 지금은 성약 천 년 역사를 하고 있습니다.
구시대 사람들이 새 시대 사람들을 힐문합니다. 신약 법으로 볼 때, 새 시대 사람들이 하나님과 예수님의 법을 범했다고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과 예수님이 새 시대 역사를 시작했습니다.
구약시대의 종의 법과 예수님이 오시고서 신약시대의 자녀 법이 달랐습니다. 또 성약시대 때 사랑을 이루는 신부 시대의 법이 다릅니다.
예수님이 신랑으로 오셨기에 신약 때의 자녀 사랑법과 다른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 시대 법대로 행하십니다.
◇ 전쟁 때의 법과 평소 때의 법이 다른 것입니다. 전쟁 때는 적이 되는 사람을 죽이면 공적자지만, 평소 때는 살인자입니다.
이와 같이 종교 세계도 그러합니다. 다윗 왕이나 모세나 여호수아나 하나님이 세운 자들도 전쟁 때는 적을 수없이 죽였습니다. 그래도 죄가 안 되었습니다.
◇ 율법주의자들은 구약 율법으로 보고 예수님을 죄인시했습니다. 예수님은 그 시대 하늘의 신약 법대로 행하셨습니다. 이 시대도 역시 예수님도, 하나님도 새 시대 법으로 죄와 의를 따지십니다.
◇ 하나님의 법은 시대 따라 다릅니다. 똑같으면 이상적인 하나님의 뜻을 못 이룹니다. 이스라엘 민족이 애굽에 있을 때 해당되는 법이 있었는데 애굽을 벗어났을 때는 그 법이 뒤바뀌었습니다. 광야에 나와서는 하나님의 법으로 바뀌었습니다.
구약 종 시대 때의 율법과
신약 자녀 시대의 법이 다르고,
성약시대 사랑의 법은
또 다릅니다.
◇ 구시대에서 새 시대로 올수록 법은 더 자유롭게 됩니다. 새 시대가 시작되면 구시대 법을 풀어 주셨습니다. 그리고 새 시대 자유로운 법을 주셨습니다.
◇ 새 시대의 자유를 얻고 하나님이 보낸 자를 통해 주신 새 시대 법을 지키는 자들을 구시대 사람들은 구시대 법으로 보고 대하면서 “너희는 죄인들이다. 법을 범했다.”라고 합니다. 구시대 입장에서 볼 때 구시대 법을 범했다고 죄로 보나 죄가 아닙니다.
새 시대 입장에서 볼 때 새 시대 법을 범했으면 그때 죄가 됩니다.
◇ 하나님이 새 시대에 구원자를 보내사, 새 역사를 펴는데 구시대 사람들은 불신하고 배척하며 새 시대로 오지 않습니다. 그들이 하나님의 법을 범한 자가 되고, 죄인이 됩니다.
하나님이 새 시대를 시작하면 사명자나 구원주를 보냅니다. 그를 쓰고 하나님이 행하십니다. 그러므로 그를 믿고 따르지 않고 불신하거나 반대하거나 배척하면, 죄입니다.
하나님이 구원자, 그를 쓰고 뜻을 행하시기 때문입니다. 실상은 무지로 하나님을 배척하고 불신한 자들인 것입니다.
◎ 이것을 알아야 합니다!
예수님이 다시 온다고 약속한 대로 신랑으로 다시 오시사, 천 년 역사가 시작됐습니다. 그러므로 새 시대가 시작됐습니다. 하나님의 창조 목적을 천 년 동안 이루십니다.
예수님의 ‘영’이 다시 오신 것입니다. 신약 때는 예수님의 육신이 신약역사를 시작하셨습니다. 재림 때는 영이 오셔서 하십니다. 영이 재림하였으니 육신이 절대 필요합니다.
이 시대 땅에서 예비한 자, 육신 있는 자가 예수님의 영을 맞고 예수님의 육신이 되어 증거합니다. 그 육을 통해 예수님이 오심을 예수님 영이 말씀하시고, 새 역사를 펴십니다.
예수님의 영과 그 육이 되는 사명자를 맞은 자는 신부들입니다. 천 년 동안 혼인 잔치 하며 창조 목적의 역사를 펴 갑니다.
이로써 구약 4000년, 신약 2000년, 총 6000년 만에 하나님의 창조 목적을 이루고 천 년 혼인 잔치를 하며 하나님과 같이 사는 삶을 사는 것입니다.
◇ 하나님이 실제 돕고 사랑하시나, 상징으로만 보고 신앙을 하는 자는 차원이 낮아서 그 실체를 깨닫지를 못합니다.
구(舊)역사는 앞으로 오는 ‘실체 역사’에 대한 ‘상징, 표상의 역사’입니다. 구약은 종의 역사, 신약은 자녀 역사, 성약은 신부 역사로 ‘사랑의 실체 역사’입니다.
◇ 월명동의 모든 존재물은 삼위와 예수님과 우리들을 ‘상징’하는 존재물입니다. 그 상징의 실체는 삼위요, 예수님이요, 사명자요, 신부들입니다. 핵은 실체입니다.
◇ 천 년 역사는 ‘사랑의 실체 역사’입니다. 상징이 아닙니다. 예수님이 실제 영체로 와서 믿고 따르는 자들을 신부로 대하고 하나님도 그리 대하십니다.
◇ 상징에 해당되는 자는 육적인 자요, 실체에 해당되는 자는 영적인 자입니다. 또, 만물은 상징이요, 실체는 사람입니다.
사람도 쪼개 볼 때 머리가 실체라면, 그 지체들은 상징체입니다. 세례요한은 ‘오실 자, 메시아’의 상징체입니다. 표상입니다. 이것을 깨닫고 살아야 합니다!!
◇ 하나님, 성령, 성자, 예수님이 1000년 역사 때는 ‘너희를 마치 신부같이 대해 주겠다.’고 말을 했고, ‘너희를 신부로 삼고 같이 살겠다.’고도 했습니다.
이것은 마치 한 사람에게는‘네가 남의 자식인데 내 아들같이 대해 주겠다.’고 말한 것과 같고, 또 한 사람에게는‘너를 내 자식으로 삼고 사랑하며 같이 살겠다.’고 말한 것과 같습니다.
둘 중 누가 ‘실제 자식, 실체’에 해당되는 사람이겠습니까?
천 년 역사는 실체 역사입니다. 하나님도, 예수님도 우리를 마치 신부같이 대해 주고 사는 삶이 아니고, 하나님, 성령, 성자, 예수님이 우리를 사랑의 실체 대상으로 삼고 같이 사는 삶입니다.
이것을 알아야 된다는 것입니다!!
◇ 지금 섭리역사는 상징 역사가 아니고, 실체 역사입니다.
구약의 아담은 ‘오실 자, 예수님’의 상징자입니다. <상징자>란 ‘본(本)사람을 대신한 자’입니다.
신약의 예수님은 자신을 새벽 별로, 각종 만물로 비유해서 상징으로 말해 주시기도 하고, 어느 때는 실체를 보여 주셨습니다.
이 시대의 하나님, 성령, 성자, 예수님은 만물로 상징으로만 말씀하고 끝내지 않으시고 실체를 보이면서 실체 역사를 하십니다. 보낸 자의 육신을 쓰고 실체로 나타나 행하십니다.
◇ 실제 이 시대 말씀을 듣고 사는 우리는 하나님, 예수님의 사랑의 대상체들입니다. 자기 믿음대로, 자기 행위대로, 자기 차원대로 사는 것입니다. 정신적, 영적 사랑의 대상체들입니다.
◇ 구시대 역사는 ‘오실 자’의 상징 역사로, 소망으로 실체를 기다리면서 희망으로 역사를 펴 왔습니다. 지금은 실체 역사입니다.
◇ 실체를 모르고 신앙생활을 하면 실감이 없습니다. 영만 와서 하지 않고, 육이 와서 역사를 폈습니다. 실체를 못 보면 실감이 없는 것입니다.
◇ 하나님이 실체 역사를 하셔도 저마다 어떻게 믿고 행하느냐에 따라 다릅니다. 저마다 실제 행하면서 신앙생활을 하면 실체를 보고 행하므로, 실감 있게 살게 됩니다.
◇ 신약 때 예수님이 “네 믿음대로 되어라.” 하시니, 실제 예수님을 절대 주로 믿은 자는 병이 나았습니다.
상징적 신앙생활을 하는 자가 있고, 실체적 신앙생활을 하는 자가 있습니다. 성경에서는 마음으로 믿으면, 의에 이르고 의인 취급을 받고 입으로 시인하고 행하면, 구원을 이룬다고 하였습니다.
(롬 10:10) “사람이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르느니라”
마음으로 하는 것과 실제 행하는 것이 다르다고 하였습니다. 마음으로 형제를 돕는 것과 실제 행위로 돕는 것이 다릅니다. 형제를 마음으로 사랑하며 안타깝다고 걱정만 하는 것하고, 실제 행하면서 희생하고 땀 흘리고 현지에 가서 애간장 태우며 돕는 것은 다릅니다.
하나님, 성령, 성자, 예수님을 사랑하는 것도 그러합니다. 마음으로 사랑함이 다르고, 실제 행위로 사랑함이 다릅니다. 역사는 실제 행하면서 한 것만 남아, 길이 됩니다.
◇ 구상은 상징이요, 구상을 실천한 것이 실체입니다. 하나님, 성령, 성자, 예수님은 실제 우리 사랑의 주체로 실존하는 실체이십니다. 우리는 실제 사랑의 대상 실체입니다. 같이 실제로 매일 사랑하며 살아야 합니다.
◇ 기다리는 시대는 희망의 시대라, 실체 역사가 아닙니다. 기다린 역사가 오면 실체 역사라 합니다.
구약 4000년은 희망으로 기다리고 살고, 신약 2000년은 메시아가 와서 구원 역사를 펴서, 마지막 성약 1000년은 혼인 잔치 역사를 폅니다. 이같이 총 7000년으로, 하나님의 창조 목적의 뜻을 끝마칩니다.
◇ 섭리역사는 천 년 혼인 잔치의 역사로, 하나님의 마지막 창조 목적의 뜻을 예수님이 영으로 다시 오셔서 그 육의 사명자와 함께 이루고 있습니다. 신약의 예언과 약속을 이룬 것입니다. 고로, 성약역사는 실체 역사입니다.
◇ 구약 종의 주관권은 하나님의 사랑의 대상이 되게, 1차로 형성되는 역사입니다. 마치 엿을 만들기 위해 물과 엿기름을 넣고 끓이는 격입니다.
신약 자녀 주관권은 물엿을 반쯤 달인 격의 역사로, 2차로 형성된 사랑의 형체입니다.
성약 신부 주관권은 완전히 달이고 졸인 엿같이 사랑을 완성한 역사입니다.
◇ 성약역사는 하나님, 성령, 성자, 예수님 사랑의 대상으로 완성된 역사라, 사람을 사랑하는 데도 그 형체를 따집니다. 인격을 완성하고 지식을 갖추고 성경도 그 시대 급으로 온전히 알고 행한 자는 완전한 형체 급입니다.
말씀을 듣기만 한 자는 형체가 굳어지지 않은 상태라, 달이기 전의 매체, 물과 엿기름 같고 꿀로 만들어지기 전, 꽃꿀을 모아 저장한 상태와 같습니다.
◇ 고로, 누구든지 온전히 듣고, 행해야 됩니다. 주가 가르친 것이어야만 온전한 진리라서 그 진리를 듣고 행해야 온전한 형체가 됩니다. 그러지 않은 자들은 형체가 미완성 형체가 됩니다.
이는 집 짓는 과정과 같습니다. 골격만 세운 형체에서, 바닥과 벽에 시멘트를 바른 형체로, 거기에 인테리어까지 해야 완성된 형체입니다.
이와 같이, 온전히 주를 통해 배우고 행하여 온전한 형체를 이루고 사랑도 행하는 자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2024년 3월 7일 목요일 새벽 잠언>
1. ‘전지전능 무소불능 유일신 하나님과 통하는 것’은 마치 밭에 감춰진 보화와 같아서 이를 발견한 자는 숨겨 두고 기뻐하여 마음과 뜻과 목숨을 다하여 행하였다.
2. ‘월명동’은 밭에 감춰진 보화와 같으니 하나님과 예수님은 시대에 보낸 자로 이를 발견케 하고, 기뻐 숨겨 두고 소유를 다 팔아 그 지역을 사게 하셨다. 그리고 마음과 뜻과 목숨을 다하여 하나님 구상대로 성령님, 성자, 예수님과 함께 아름답게 신비하게 웅장하게 만들어 시대를 좇는 인(人)구름들 모두 모여 오게 하셨다.
3. ‘자기가 소원하고 찾던 사람’은 마치 밭에 감춰진 보화와 같으니 발견한 자는 숨겨 두고 기뻐하며 자기의 소유를 다 팔아 시간과 정성을 쏟아 자기 사람으로 만들었다.
4. ‘하나님이 세상을 구하려고 보낸 자’는 마치 밭에 감춰진 보화 같으니 이를 발견한 자는 숨겨 두고 기뻐하며 자기 소유와 인생을 다하며 마음과 뜻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여 좇아 자기 것으로 삼아야 한다.
8. ‘월명동 최고 작품성 있는 걸작품들’은 마치 밭에 감춰진 보화와 같으니 이를 발견한 자는 숨겨 두고 기뻐하며 사고 그 자리에 있는 것을 꾸미고 관리하여 좋아하였다.
하나님과 성령님은
우리가 기도한대로
행해 주겠다고 말씀하셨다.
이를 믿어라.
그래야 걱정과 염려가 없다.
그때가 되면
https://youtu.be/lRka1eLkq38?si=r1ORmPkoOFrDrm6L
하나님께 기도 찬양 영광 돌립니다~
함께 기도 32
구시대에서 새 시대로 올수록 하나님의 법은 더 자유롭고 더 사랑의 역사입니다. 하나님은 새 시대가 시작되면 구시대 법을 풀어 주셨습니다. 그리고 새 시대의 자유로운 법을 주셨습니다.
하나님의 천년 역사는 실체 역사입니다. 하나님도, 예수님도 우리를 마치 신부같이 대해 주고 사는 삶이 아니고, 하나님, 성령, 성자, 예수님이 우리를 사랑의 실체 대상으로 삼고 같이 사는 삶입니다.
실제 이 시대 하나님의 사랑의 말씀을 듣고 사는 우리는 하나님, 예수님의 사랑의 대상체들입니다. 그리고 자기 믿음대로, 자기 행위대로, 자기 차원대로 삽니다.
섭리역사는 천년 혼인 잔치의 역사로, 하나님의 마지막 창조 목적의 뜻을 예수님이 영으로 다시 오셔서 그 육의 사명자와 함께 이루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신약의 예언과 약속을 이루어 주시고 계십니다.
온전히 주를 배우고 온전히 그 말씀을 행하여 온전한 형체를 이루고 그 사랑을 행하는 신부가 되겠습니다. 사랑하는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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