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명동도 시대를 깨닫고 알고 사는 자는 ‘이곳이 하나님 천 년 역사 핵심지구나.’ 하며 그 가치를 깨닫고 감탄합니다. 그러나 세상의 모르는 사람들은 와서 봐도 ‘잘 개발해 놓고 신앙생활 하는구나.’ 정도만 압니다.

잔치에 한 자리 차지해 참석하여도 아는 자는 기뻐 즐기고, 모르는 자는 객으로 음식만 먹고 나름대로 즐기다 갑니다.

하나님은 “모르는 자는 ‘너희는 하나님 뜻을 편다면서 왜 이 같은 일을 당하지?’ 하지만, 아는 자는 고통 중에도 기뻐 함께한다.   

은혜를 주었을 때 깨닫는 자는 기뻐 뛰고, 모르는 자는 책망받고 고통으로 산다.” 하셨습니다.

모르는 자만 ‘왜 내가 이런 고통을 당하지?’ 합니다. 새 역사를 펴니 새 역사로 인하여 그런 일들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알고 행해야 시대 사랑의 대상이 되어 하나님, 성령, 성자, 주와 사랑하며 같이 살아갑니다. 아는 자는 그 아는 것을 행합니다.

아는 자가 담대하고 힘있게 역사를 이끌며 끝까지 간다. 밭에 감춘 보화를 아는 자만   끝까지 자기 소유를 다 팔아서라도 그 보화를 취하나니, 아는 자는 누가 안 시켜도, 하면 유익이니 행한다.   



하나님은 그 종이나 선지자나 구원자들에게   미리 알려 주고 같이 행하신다고 성경에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과 성령과 성자는 때가 와서 하나님의 뜻을 행하기 위해 미리부터 사명자를 택하십니다. 그에게 미리 가르쳐 주어 알게 하고, 때가 되면 그와 함께 행하며 계획된 시대 천지 창조 목적 뜻을 이루십니다.

그렇게 구약도 신약도 이뤘고, 지금도 하나님은 말씀을 준 자를 통해 하나님의 뜻을 전하고 행하고 계십니다.



예수님은 신약에 약속하신 말씀의 때에 다시 영으로 오셨습니다.

이 역사는 천하가 변하여도 변하지 않는 하나님이 직접 행하고 계신 역사입니다.

하나님, 성령, 성자는 때가 되면 총지휘자가 되어 해같이 매일 비추며 다 행하십니다.

모르는 자만 모르고 기다리며 삽니다. 그래도 하나님 천 년 역사가 시작했으니 시대 혜택을 그 차원 행위만큼은 주십니다.

처음에는 사명자 한 명으로 역사를 시작하여 행하십니다. 그가 시대를 따라 새 말씀을 전하니 그 말씀을 듣고 2명, 3명씩 와서 함께 역사를 펴 갑니다. 나머지는 시대 복음을 만나서 시인하고 알 때까지는 시대 혜택을 받으면서도 시대를 모릅니다.

4000년간 율법을 좇은 자들은 메시아 예수님이 와서 2000년 동안 신약역사를 행하며 그들이 기다린 하나님 뜻을 이루었어도 안 믿었습니다. 그들은 지금도 기다리는 역사도, 하나님도, 주도 안 왔다고 합니다. 그같이 몰라도 하나님은 하나님 뜻을 좇는 의인들이 세운 조건에 의해 그 차원대로 은혜를 주며 행하십니다.

2000년간 예수님 육을 기다리는 자들도 그러합니다. 상식적인 성경 말씀인데 영을 육으로 풀고, 사람을 두고 말씀한 것을 만물로 푸는 무지자들입니다. 메시아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이라 신령한 영으로 풀어야 하는 말씀을 육으로 푸니 사명자도 맞지 못한 것입니다.

예수님은 “그들은 바울을 통해서 성경을 육으로 풀지 말라고 했어도 육으로 풀어 나 예수의 육체만 기다리는 육적 신앙이 된 자들이다. 너희는 시대 보낸 자의 말을 믿고 사니 나를 영적으로 맞고 산다.” 하셨습니다.
신약시대에 하나님은 영으로 오셔서 예수님을 육으로 삼고 역사하셨습니다. 아무리 시대 표적을 보여 주어도, 율법자들은 알면서도 고집, 교만, 체면으로 마음이 굳어져서 일부러 믿지 않았습니다. 알면서도 부인하니 하나님까지 부인한 격이 됐습니다. 하나님이 행하신 일이라 예수님의 행함을 믿어야 하는데, 예수님을 믿고 인정하기 싫어 했습니다.

사람들은 지구는 서 있고 해가 간다는 천동설을 수만 년간 믿어 왔습니다. 거꾸로 봤습니다. 해가 가만히 있고 지구가 돈다는 지동설을 말해도 안 믿고 미친 자들의 이론이라고만 하였습니다.

결국 지능이 발달하니 다 믿게 되었습니다. 이와 같이 시간이 지나면 모두 섭리역사 진리를 인정합니다. 하나님이 계속 행하십니다.

복음으로 저마다 하나님을 모시고 삶으로 시대 뜻을 이뤄 하나님의 축복을 받게 해 줘야 합니다.



선생도 복음을 전하다 복음으로 갇히었지만 계속 시대에 하나님이 전하시는 말씀만을 전했습니다. 결국 하나님 뜻을 이루어 갑니다. 복음으로 인해서 환난이 왔어도 행해야 그로 인해 환난을 받은 것이 모두 해결됩니다. 야곱도, 요셉도, 모세도, 다윗도, 선지자들도 모두 그로 인해 고통받아도 그것을 행하여 하나님 뜻을 이루었습니다.

말씀을 전해야 우리도 더 충만하게 새롭게 되고, 그들과 같이 은혜를 받으면서 더 차원 높인 사랑의 대상이 되어 더 얻고 살아가게 됩니다.

특히, 하나님이 자기에게 보내 주시는 자는 자기가 전도해야 합니다. 그로 인해 자기 소원을 이룹니다.

예전에는 세계가 변화되어 개를 방에서 기르는 시대가 올 줄 몰랐듯이 2023년도에 한국과 세계가 이같이 될지 몰랐습니다. 천 년 섭리역사도 이같이 하나님이 행하실지 아무도 몰랐습니다. 결국 하나님은 도적같이 행하셨습니다. 성경을 이루셨습니다.

이 시대 천 년 역사도 때 되어서 하나님과 성령께서 반세기 동안 역사해 주셨어도 부인하는 자와 일부러 복음을 받지 않은 자는 하나님이 행하셔도 이 역사를 모릅니다. 안 배우면 천 년을 살아도 모릅니다.

마지막 천 년 역사는 하나님이 예수님과 같이 오셔서 시대 사명자를 통해 하십니다. 어느 시대나 시대 사명자를 믿고 따라야만 압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역사하심을 믿으면 사명자도 믿어 줘야 하니 일부러 믿지 않습니다.

자기가 눈 감고
태양의 존재가 없다고
부인해도 태양은 분명히 존재합니다.

자기만 그런 사고를
가지고 있을 뿐입니다.


하나님은 시대 뜻을 사람을 통해 펴십니다. 그런데 그를 싫어하여 믿지 않으면 자기만 눈 감고 소경되어 살게 됩니다.




영계에 가 보면 육신이 고집이 세고, 의를 싫어하고, 교만한 자들의 영은 구원을 못 받고 갖은 고통을 겪고 삽니다. 거기서도 자기 마음, 사고로 고집을 부리면서 살아갑니다. 고집이란 자기의 못된 모순된 사고입니다. 자기 무지의 마음이며, 자존심입니다. 그것이 자기를 망하게도 하고, 괴롭게도 합니다. 이런 자들은 좋은 길이 있는데도 “나는 네가 싫으니 네 가는 길도 싫다. 좁은 비탈길이 좋아.” 하고 그 길로 가는 자들입니다. 그 험난한 길은 끝이 없습니다. 자기 고집으로 자기가 자기를 고생시킵니다.

영계에서도 육계에서도 자기 무지, 자기 위신, 고집이 자기에게 계속 고통을 줍니다. 험한 길 가다 그 길에서 벗어나면 즉시 고통을 안 받습니다. 그같이 사망과 무지에서 떠나야 고통을 안 받습니다.

자기 주장, 자기 중심, 자기 생각은 역시 사망입니다. 하나님의 생각을 알고 행하는 자는 이상세계에서 딴 세상의 삶을 삽니다. 같은 세상에 살아도 하나님의 대상 되어 사니 그 생각도 삶도 다릅니다.

예수님은 “같이 있어도 하나는 데려감을 당하고, 하나는 버려진 것도 모르고 버려둠을 당한다.” 하셨습니다.

(마 24:40~41) “그때에 두 사람이 밭에 있으매 하나는 데려감을 당하고 하나는 버려둠을 당할 것이요 두 여자가 매를 갈고 있으매 하나는 데려감을 당하고 하나는 버려둠을 당할 것이니라”

이 시대도 하나님이 세상 떠들썩하게 행하셔도 악평하고 불신하는 자가 있고, 아는 지혜자들은 새 시대를 따라와 하나님 뜻을 이루고 육은 육대로, 영은 영대로 영원한 축복을 받고 살아갑니다.



2025년 마무리하는 기도~3

새 역사를 펴니 새 역사로 인하여 어려움이 닥치는 것입니다.

그러나 아는 자는 그 아는 것을 행합니다. 아는 자가 담대하고 힘있게 역사를 이끌며 끝까지 갑니다.

아는 자는 누가 안 시켜도, 하면 유익이니 행합니다.   

하나님께서는 때의 하나님으로 하나님이 계획한 때가 되면 1초도 늦지 않게 행하십니다.

역사의 표적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자기가 눈 감고 태양의 존재가 없다고 부인해도 태양은 분명히 존재합니다. 자기만 그런 사고를 가지고 있을 뿐입니다.

사망과 무지의 길에서 생명길을 가기를 소망합니다. 사랑하는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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