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처음에는 예수님도 하나님도 이스라엘 민족에 복음을 전해 그들을 통해 세계로 복음을 전파하려고 하셨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복음을 받지 않았습니다. 결국 이방인들이 복음을 받아들여 이방인을 중심으로 하여 세계로 복음을 폈습니다.
첫 번째에 뜻을 두었으나 두 번째로 뜻이 이뤄졌습니다. 하나님의 성경의 전체 뜻이 이같이 이루어졌습니다. 지금 이 시대도 그같이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고로 지혜 있는 자들이 따라 이루고 갑니다.

구약의 역사를 보면 하나님은 장자를 세워 하나님 뜻을 이루려 하셨습니다. 그러나 장자들이 제대로 못 하니 차자를 세워 가정과 민족과 세계적으로 역사하셨습니다.
아브라함 가정에서는 장자 이스마엘이 아닌 차자 이삭을 통해서 하나님 뜻을 이루셨습니다.
이삭의 가정에서는 장자 에서가 아닌 차자 야곱을 통해 하나님 뜻을 이루셨습니다.
야곱의 가정에서도 12형제 중 많은 형들을 두고 요셉을 통해 하나님 뜻을 이루셨습니다.
역사적으로 볼 때 하나님은 아담이 에덴에서 하나님 뜻을 못 이루니 후 아담이신 나사렛 예수님을 통해 하나님의 뜻을 이루셨습니다.
그러나 시대가 예수님을 죽이니 다음 시대 천 년사에 다시 또 합당한 자를 세워 누구도, 어떤 상황도 그를 죽이지 못하게 하시며 마지막 역사를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영으로 다시 오시니 후 역사 때는 안 돌아가십니다. 시대 육신 쓰고 끝까지 하시어 신약 때 일찍 돌아가셨던 한을 풀고 행하십니다. 고로 하나님은 그 육신으로 쓰는 자의 생명을 지키시며 60번 이상 죽음에서 살려 주셨습니다.
예수님 당세 때 일찍 죽은 것이 한이 되어 다시 오셔서는 제2의 육신으로 정녕코 행하며 한을 푸셨습니다.
전자와 후자의 역사입니다. 이것은 절대 역사의 이치입니다. 만물도 그러하고, 하나님 역사도 그러합니다. 지금도 앞의 사람이 못하면 후에 다른 자를 세워서 합니다.
전자가 죽으면 또 후자를 세워서 하십니다. 하나님 역사가 이같이 되어 왔습니다.
전 역사와 후 역사는 이어집니다.

가나안 복지 들어갈 때도 후자 여호수아를 세워서 들어갔습니다. 우리는 이미 처음부터 가나안 복지 노정 역사였습니다.
확인하고 알면, 사망에서 뒤돌아 나와 생명권에 살게 됩니다. 무지는 사망길로 가게 합니다.
선생은 성령께서 늘 가르쳐 주시어 배웁니다. 이를 모두에게 늘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늘 사명자를 통해 알게 해 주십니다.
알았으면, 속히 사망권에서 나오는 행함을 해야 합니다. 그래야 사망권에서 나와 생명권에 오게 됩니다. 고로 행하는 자를 살았다고 합니다. 알기만 하고 행치 않으면 사망에서 나오지를 못합니다.
진흙탕 어둠에서 빛이 있는 곳으로 벗어나는 방법을 알았다고 하면 이것은 마음만 희망으로 기쁩니다. 육은 실제 벗어날 때까지 고통을 받습니다. 힘들어도 행하여 실제 어둠에서 나와야만 마음도 기쁘고, 몸의 고통도 없습니다.
생명의 말씀을 듣고 행하는 자는 사망권을 멀리 등지고 계속 빛으로 나아갑니다. 이미 생명권에 있는 자라도 더 의를 행하면 더 높은 차원의 빛 가운데 나오게 됩니다.

하나님은 아담, 하와 때부터 종교 역사를 시작하신 이후로 계속 시대마다 말씀을 주시어 후손들이 더 높은 차원으로 살아가게 해 주셨습니다.
구약 4000년이 지나자 하나님은 차원 높여 섭리하셨습니다. 구약시대 때 하나님이 약속하신 대로 예수님을 보내셨습니다. 하나님은 예수님뿐 아니라 예수님을 믿고 따르는 자들도 예수님처럼 하나님의 자녀 입장으로 전환되도록 역사하셨습니다. 그 후로 신약 2000년 역사 안에서도 시대가 발달함에 따라 차원을 높여 하나님의 뜻과 목적을 이루는 역사를 펴셨습니다.
그리고 신약에서 약속하신 대로 또 예수님이 영으로 강림하사 하나님은 새로운 전환의 역사를 시작하셨습니다. 천 년 동안 시대 사명자와 함께 차원 높여 새 시대 역사를 펴 가십니다.
개인도 민족도 세계도 시대도 발달하여 가듯이 하나님의 목적은 계속 차원 높여 이루어져 왔습니다. 현재에도 미래에도 계속 차원 높이며 이루어집니다. 이것은 지구가 도는 이치와 같이 절대적이고 영원한 말씀입니다. 현재도 과거도 미래도 부인할 수 없는 순리의 역사입니다.

그런데 미련한 자들은 때가 안 되었는데도 그렇게도 애타 하다가 막상 선조들이 그토록 기다리는 역사가 자기 때에 표적으로 왔는데 제대로 확인도 않고 자기 인식으로 사명자를 보고 불신하고 배척합니다. 이는 자기 평소 사는 근성들이고, 양심에 화인 맞은 자들의 행위입니다.
역사를 보면 항상 기다린 하나님의 역사가 왔는데 기다리던 자들이 그렇게도 배척하고, 평소 살아온 대로 핍박을 노골적으로 악하게 하였습니다.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이 사명자 통하여 하시는데, 하나님이 자기 통해서 하는 일이라고 하며 하나님을 이용하여 사명자를 미워하고, 시기하고, 없애려고 합니다.
하나님은 그들의 행위가 노골적으로 악함을 보시고, 그동안 인생 살아온 악한 행위를 다 용서치 않고 심판하십니다.
사람만 보고 대하지 말고 하나님이 그를 통해 행하시는지 온전히 분별하고 확인하고 대해야 합니다. 그러지 않으니 하나님이 그 행위의 악함을 보시고 공의롭게 대하십니다.
악과 미움과 평화롭지 못함은 하나님의 적인 고로 하나님이 그 사자들과 모두 멸하십니다. 과거에도 그리해 오셨고, 현재에도 그리 행하십니다. 그 날과 그 시는 못 피합니다. 육신 죽음에서 끝나지 않고, 영이 영원히 고통을 받는 형벌에 처하게 됩니다.
의인의 기도는 확실하게 들어주십니다. 고로 낙심 말고 기도해야 합니다. 행악자들은 하나님의 적이니 회개치 않으면 절대 하나님이 청소하여 없애십니다.
구시대는 무지하여 하나님께서 새 역사를 하시는데도 모두 자기 생각대로 뭉쳐서 싸우고 전쟁까지 하면서 새 역사를 반대하고 불신하고 몰아냈습니다. 결국 하나님은 사명자를 세워 시대 새 역사를 따르는 자들과 함께 하나님의 뜻을 행하셨습니다.
구시대는 때를 못 받아들였기에 그 죄로 극적인 고통이 더하여져 큰 고통을 받게 되었습니다. 계속 싸움하며, 화평이 없고 해가 진 밤을 맞았습니다.
하나님은 결국 행한 대로 심판하십니다. 새 역사를 미워하고 싸움한 연고로 구시대는 계속 교파 싸움하는 분쟁의 역사로 돌아가게 되었습니다. 화려한 역사는 꽃이 시들듯 되었고, 적막하게 되었습니다. 때 지나니 해가 어두워져서 교회가 점점 늙어가게 되었습니다. 무지의 싸움을 하는 운명들이 되고 말았습니다. 하나님께서 합당한 사람, 사명자를 시켜 행하시는데 자기 행위가 무지하고 악함으로 소경이 되어서 하나님 역사에 같이하지 못하게 된 것입니다.

구약의 율법자들도 이스라엘에 예수님이 오신 후 2000년간 계속 분쟁과 전쟁의 운명 역사였습니다. 지금껏 그러했습니다. 하나님이 보내신 예수님을 못 맞아서입니다. 싫으면 하나님만 믿고 끝났으면 되는데 핍박하고 죽였습니다.
‘하나님은 즉시 못 하게 하시지, 왜 그냥 두셨을까.’생각하는데, 하나님은 다 행하셨습니다. 시험이 끝나면 채점하듯이 저마다 행하고 나면 행한 대로 다 갚아 주십니다. 전능자 하나님이 온 인류, 개인, 가정, 민족, 세계 모두에 그렇게 하십니다.
하나님, 예수님은 천주교에도 행하시고서 때가 되어 루터를 통해 천주교의 문제를 청산하고, 새롭게 개신교를 세워 같이 행하게 하려 하셨는데, 그들은 무지하여 확인하지도 않고 싸우고 불신했습니다. 고로 새 역사 개신교는 차원 높여 역사 펴고, 구 역사 천주교는 482년이나 고통 속에서 개신교를 대적하여 싸움하고 언쟁하며 전쟁했습니다.
결국 예수님께서 다시 오사 선생을 통해 유럽에 가셔서 개신교와 천주교의 문제를 풀어 주시고 서로 화합하게 해 주셨습니다. 그제야 482년의 싸움이 끝났습니다.
예수님이 다시 오셔서 구시대 기독교의 문제를 풀어 주셨습니다. 이것은 오직 시대 보낸 사명자만이 그 육이 되어 합니다.
정치도 종교도 새 시대가 시작되면 새 시대 사명자가 구시대 문제를 풀어 줍니다. 하나님, 성령, 성자, 예수님께서 인도하시는 대로 풀어 주고, 천 년간 새 역사가 갑니다.
때가 되었어도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을 생각지 않고 사는 자들은 공의의 하나님께 심판받습니다. 의를 행한 자들에게는 의에 따라 축복을 주십니다.
역사에 눈을 뜨지 못하면 구 역사가 연속 가는 줄 압니다. 구약인들은 아직도 계속 구약역사가 가는 줄 압니다. 2000년 전 예수님 오시고 구약 주관권은 끝났습니다. 그러나 구약인들은 계속 구약인 줄 생각합니다.
소경은 자기만 안 보이는데, 눈 뜬 자도 자기같이 안 보이는 줄 압니다. 안타깝습니다. 시대를 모르는 자는 눈 뜬 소경입니다.
4000년이 끝나니 하나님은 1초도 더하지 않고 새 역사 신약을 시작하셨습니다. 전능자 하나님은 1초도 어김없이 행하십니다.
그 후 신약역사로 구약의 예언과 약속을 이루면서 자녀급으로 차원 높여 가셨습니다. 그러다 신약 2000년 자녀 역사 주관권이 끝나니, 1초도 늦지 않게 신약의 약속대로 신부권 성약 1000년 역사를 펴 가셨습니다. 그런데도 새 역사를 못 맞은 신약인들은 계속 신약역사가 가는 줄 압니다. 모르면 새 역사를 받아들일 때까지 천 년 동안 그리 생각합니다.
학교에서 수학 공식 배웠지요? 온종일 수학 문제를 풀었어도 계산 하나만 틀리면 그 답은 틀리게 됩니다. 주산할 때 더하기, 빼기, 나누기, 곱하기 중 하나만 틀려도 빵점입니다. 절대적입니다.
4000년 구약역사 한다고 하고 1초라도 더 하면 4000년 역사 계산법 약속을 어긴 것이 되어 수학의 하나님과 맞지 않습니다.
신약 2000년이 끝나면 그 주관권은 끝납니다.1초라도 더 하면 약속을 어긴 것이 되어 0점입니다. 하나님이 0점 맞으시겠습니까.
선생이 하나님과 약속한 시간을 100일간 1초도 어기지 않고 기도하였더니 “나 여호와는 천지 창조 이후 1초도 시간 지키지 않은 것이 없다.” 하셨습니다.
행해야 비밀의 말씀을 가르쳐 주십니다. 그냥 가르쳐 주지를 않으십니다. 행치도 않고 들으니 귀한 말씀을 해 줘도 가치를 모릅니다.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애굽에서 네 자손이 이방의 객이 되어 400년 동안 섬기다가 재물을 가지고 나온다고 말씀하시고, 정말 이스라엘 민족이 애굽애서 고역을 겪은지 400년이 되자 애굽에서 벗어났습니다.
(창 15:13~14)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정녕히 알라 네 자손이 이방에서 객이 되어 그들을 섬기겠고 그들은 사백년 동안 네 자손을 괴롭게 하리니 그 섬기는 나라를 내가 징치할찌며 그 후에 네 자손이 큰 재물을 이끌고 나오리라”
(출 12:40~41) “이스라엘 자손이 애굽에 거주한 지 사백 삼십년이라 사백 삼십년이 마치는 그 날에 여호와의 군대가 다 애굽 땅에서 나왔은즉”
자기도 하나님의 말씀을 지켜야 날짜와 시간을 지키시는 하나님의 행하심을 압니다.
구약 소생급 역사, 신약 장성급 역사, 성약 완성급 역사입니다. 하나님, 성령, 성자, 예수님께서 이같이 행하십니다. 우리는 삼위와 예수님과 시대 보낸 자와 같이 성약 완성급 역사의 뜻을 실천해 갑니다.
가나안 복지 노정도 애굽 소생급, 신광야 장성급, 가나안 복지 완성급으로 나뉩니다. 민족 차원에서 하나님 뜻을 이루며 목적지로 나아갔습니다.
예수님도 사생애 30년간, 공생애 3년간, 부활 생애 40일간 행하셨습니다. 부활의 역사는 “역사를 완성하였다.” 함입니다.
‘하-중-상’으로 쪼개 보는 이치는 개인, 가정, 민족, 종교 등 지구 세상 모두에 해당됩니다. 이같이 다 구분돼 있습니다.
사람의 일생도 나눠 보기를 바랍니다. 소년기-청년기–장년기입니다. 이같이 저마다 구분하면 다 3단계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때는 아무 때나 오지 않고 계절 같이 옵니다. 봄–여름-가을과 같이 옵니다. 자기 때가 오면 환경이 어떠하더라도, 어느 위치에 있더라도 행해야 합니다. 그때 씨를 뿌려야 성장기 때 성장하고, 부활기 때 무르익어 거두게 됩니다.
자기가 안 하면 누가 하겠습니까. 하면 도와주십니다. 성령이 도우시며, 합당한 자를 보내 도와주기도 하십니다.
모두 체험하지 않았습니까. 모두 있는 것을 말해 줍니다. 우리는 행한 일을 말하고 증거합니다. 어리석게 하나님 시대에 대해 모르는 저 어두운 세계의 소경들에게 안 된다고 울지 말고, 아는 자가 담대히 해야 합니다. 하면 됩니다.

때가 되서 고난을 받으면서도 하나님의 천 년 역사는 갑니다.
사도 요한도 예수님께서 계시를 주셔서 밧모섬에서 고통받으면서도 죽기 전까지 오직 하나님 뜻을 결단코 기록했습니다.
요한이 있던 밧모섬은 사람이 살 수 없는 외롭고 쓸쓸하고 적막한 곳이었습니다. 다른 자는 다 복음으로 순교하고 혼자 남아서 예수님이 보여 주신 하나님의 계시를 썼습니다. 요한이 안 하면 온 세상에 할 자가 없었습니다.
이와 같이 시대를 안 자가 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조건을 세워 주셨기에 그 조건으로 요한이 하나님의 말씀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구약은 조건이 안 되어 깊은 말씀을 줄 수가 없었습니다. 신약은 예수님께서 조건을 세워 주셨기에 제자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고로 예수님께서 요한을 통해 하늘나라 천국도 가르쳐 주셨습니다. 이를 써 놓았기에 후대까지 예수님의 가르침을 알 수 있었습니다. 그 외의 것은 성경에는 자세히 기록되지 않았습니다.
모두 자기 때가 오면 자기가 행하는 것이 자기의 책임입니다.
섭리사도 민족을 위해, 후대를 위해 조건을 세우고 기록해야 합니다. 못 해 놓으면 후손들이 모릅니다. 할 일이 많습니다.
그날이 도적같이 옵니다. 지금이 부지런히 죽도록 행할 때입니다.
예수님이 요한보고 “네가 본 것을 기록하라.” 하셨습니다.
(계 1:19) “그러므로 네 본 것과 이제 있는 일과 장차 될 일을 기록하라”
역사는 그때그때 본 자와 행한 자가 기록해야 합니다. 이 시대 선생도 본 자에게 기록하라고 합니다. 여러분들 중에도 하나님 역사를 보고 확인한 자가 자세히 기록해야 합니다. 글로, 그림으로, 각종으로 기록해 놓아야 합니다.
어떤 젊은 자에게 선생이 “너, 그림 그릴 줄 알지?” 하니 “예.” 했습니다. “내가 구상 줄게. 나에 대해 그림 하나 그려 놓아라.” 했는데 미루다 1년이나 걸려서 그렸습니다. 그는 그림만 남기고 갑자기 50세에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리될지 아무도 몰랐습니다. 모두 무엇이든 남겨야 합니다. 다빈치가 가만히 있었으면 그리 작품을 남겼겠습니까.
역사를 확인하지 않은 자는 모릅니다. 확인한 여러분들이 확인한 이 역사를, 이제는 증거해야 합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인생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결국 모든 일은 둘 중 하나의 선택으로 나뉩니다.
성경 속 아담도 그 선택 앞에 서 있었습니다. 하나님은 “하지 말라.”고 분명히 말씀하셨습니다. 하지만 아담은 그 말씀을 지키지 못했습니다. 하지 않아야 할 것을 했기 때문에 인류의 운명이 달라져 버린 것입니다.
우리의 매일의 삶도 마찬가지입니다.
“해야 할 일을 하지 않으면 실패”이고,
“하지 말아야 할 일을 하면 실패”입니다.
그 간단한 것을 놓쳐서 많은 사람들이 넘어지고 무너집니다.
저는 이런 꿈을 꾸었습니다.
거대한 소나무 위에서 얽힌 가지들을 하나하나 톱으로 잘라내고 있었습니다.
그것은 마치 내가 기도하면서 나의 모순과 잘못된 것들을 잘라내는 것과 같았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다람쥐가 지나가자, 순간 그 다람쥐를 잡으려다 나무를 붙잡은 손을 놓아버렸습니다.
그때 꿈에서 깨고 하나님께서 깨닫게 해 주신 것은 이것입니다.
“항상 한 가지를 붙들어야 한다. 두 가지 다 잡으려 하면 무너진다.”
하루하루 우리 앞에는 반드시 두 길이 놓여 있습니다.
하나님은 오늘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항상 둘 중에 하나는 할 일이고, 다른 하나는 하지 말아야 할 일이다. 그것을 분별하라.”
지금 이 시간은 다시 오지 않습니다.
눈앞의 다람쥐 같은 세상 유혹에 마음을 빼앗기지 말고, 하나님이 원하시는 선택을 하시기 바랍니다.

민족과 세계 평화를 위한 기도 + 하나님의 뜻을 온전히 이루기 위한 기도 45
섭리역사는 신약의 연속입니다. 다만 신부 시대 천 년 역사로 차원을 높였습니다.
사명 주었는데 못하면 다른 사람이 합니다. 기여코 이루시는 하나님의 역사앞에 우리의 책임분담만 남아 있습니다.
확인하여 알고 가면 담대히 용기내어 갈 수 있습니다. 가르쳐 주는 기회를 놓치면 무지도 죄가 됩니다.
행하는 자를 살았다고 합니다. 알기만 하고 행치 않으면 사망에서 나오지를 못하기 때문입니다.
마음만 희망으로 기쁘면 안됩니다. 육은 실제 벗어날 때까지 고통을 받습니다. 힘들어도 행하여 실제 어둠에서 나와야만 마음도 기쁘고, 몸의 고통도 없습니다.
때가 되어 하나님의 성약역사를 펼치시는 이 때에 하나님을 중심에 두고 의를 행한 자들은 의에 따라 축복을 받습니다.
부활의 역사는 역사를 완성하는 때입니다.
자기 때가 오면 환경이 어떠하더라도, 어느 위치에 있더라도 행해야 합니다. 그때 씨를 뿌려야 성장기 때 성장하고, 부활기 때 무르익어 거두게 됩니다.
성령이 도우시며, 합당한 자를 보내 도와주기도 합니다.
부지런히 자신의 달란트를 남기며 우리는 행한 일을 말하며 하나님이 보내신 사명자를 증거해야 합니다. 하나님이 보내신 성약의 사명자, 진짜이기 때문입니다. 미리 뛰고 달려가는 것이 지혜입니다.
오늘도 깊이 감사드리며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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