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랑은 사랑을 낳는다.
사랑하면 하나님도 성령님도 따지지 않고
사랑해서 돕고 대신 해 주신다.
감동 줬을 때 해야 할 일이 생각나고,
잊었던 것도 생각난다. 그 순간이 지나면
감동도, 생각도 사라진다.
고로 감동됐을 때가 기회다. 감동됐을 때
마음, 생각, 몸이 모두 날면서 해진다.

크면 한다.
<누가복음 2장 52절>
“예수는 그 지혜와 그 키가 자라가며 하나님과 사람에게 더 사랑스러워 가시더라”
<에베소서 1장 17~19절>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하나님, 영광의 아버지께서 지혜와 계시의 정신을 너희에게 주사
하나님을 알게 하시고 너희 마음눈을 밝히사 그의 부르심의 소망이 무엇이며
성도 안에서 그 기업의 영광의 풍성이 무엇이며
그의 힘의 강력으로 역사하심을 따라 믿는 우리에게 베푸신 능력의 지극히 크심이 어떤 것을 너희로 알게 하시기를 구하노라”

기암절벽들로 둘러싼 아름다운 산은 길이 험합니다. 큰 자는 가는 길이 험합니다.그럼에도 하나님 안에서 끝까지 하면 그동안 한 것을 다 얻습니다.
하나님은 “내가 곧 시작과 끝이다. 처음과 나중이다.” 하셨고, “회개하는 자가 복이 있다.” 하셨습니다.
(계 22:13)
“나는 알파와 오메가요 처음과 나중이요 시작과 끝이라”
(시 32:1)
“허물의 사함을 얻고 그 죄의 가리움을 받은 자는 복이 있도다”
하나님 안에서 끝까지 자기를 깨끗이 하는 자와 시대를 좇는 자는 복이 있습니다.
옛 시대는 하나님께서 계획하신 그 시대의 뜻을 다 행하고 얻고 끝났습니다. 새것은 새 시대에 있습니다. 개척하고 만들어야 얻습니다.
육의 것도 영의 것도 그러합니다. 이는 옛것보다 더 크고 이상적인 것들입니다. 과거 신약역사에서 하나님, 성령, 성자, 예수님이 약속해 주시어 희망으로 기다린 것들입니다.
새 시대에서 그 약속이 이루어지며, 그에 속한 모든 것들이 이루어집니다. 천 년 동안 새 시대에 속하여 행하는 자마다 이루게 되는 하나님 역사입니다.
하나님의 새 시대가 왔어도 새 시대에 속하여 행하는 자에게만 그 약속의 역사가 이루어집니다. 항상 성령은 기준자로 말미암아 말씀하십니다.
주 안에서 끝까지 가야 주의 기업을 얻습니다. 단, 가면서 그에 맞는 뜻을 행하며 자기 때가 될 때까지 커야 합니다.
때에 따라 가꾸는 대로 과일이 커 가듯 자신도 행하는 대로 크게 됩니다. 크면 주인이 귀히 여기고 귀히 씁니다.
그러다 크면 때맞춰 쓰십니다. 크는 중에도 쓰시고, 더 크면 더 큰 뜻을 맡기시며 그를 통해 점점 더 크게 행하십니다.
일은 보화입니다. 그릇이 커야 담기는 양만큼 큰일을 맡깁니다. 자기는 자신감도 있고 잘한다고 하나, 하나님과 주가 볼 때는 다릅니다. 고로 크라는 것입니다.

재능과 능력대로 유능해야 맡깁니다. 그렇지 않으면 하고자 하는 자가 전심을 다하여도 잘하지 못합니다. 마음과 능력은 다릅니다.
작은 기계나 장비 가지고는 마음과 정성을 다하고 몸부림친다고 해도 거대한 바위를 들지 못합니다. 큰 장비를 가지고 하면 놀면서도 합니다. 사명자는 큰 장비와 같습니다. 그러므로 사명자가 오면 큰일도 다 합니다.
고로 지금 성장한 만큼, 그릇대로 일을 맡깁니다. 그러면서 더 배우고, 더 크게 하면서 능력과 재능껏 그 일에 프로가 되게 하는 것입니다.
책임자가 못하면 그를 따르는 자들이 고통을 겪게 됩니다. 고로 잘하는 자에게 맡깁니다.
맡은 자는 자기 맡은 일에 충성하고 연구하며 많이 행해야 합니다. 맡긴 달란트를 가지고 많이 행하여 주와 함께 많은 달란트를 남겨야 합니다.
많은 달란트를 남기려면, 하나님, 성령님과 일체 되고, 주와 일체 돼야 합니다.
자기란 장비로는 큰 산을 옮길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과 성령과 주와 일체 돼야 큰일을 하고, 큰 산을 옮깁니다.
또, 매일 일하듯 매일 굳건한 믿음과 기도와 실천입니다. 그리고 끝까지 하기입니다.
행해 놓고 쓰러져도 행해 놓은 것은 거둘 때가 되면 거둡니다. 그런데 하다가 쓰러지면 누가 거둡니까. 그 일의 사명자는 마음 눈을 떴기에 압니다. 고로 다른 자는 못 하는 일을 합니다. 고로 거둘 때까지 끝까지 하기입니다.

실천한 것, 하나님이 키워 놓은 열매는 계절 따라 계속 더 크다가 거둘 때가 오면 거두게 됩니다. 고로 끝까지 행하기입니다.
과일도 곡식도 크다 말면 만족하게 열매가 열지 않아 만족한 수확을 못 합니다. 끝까지 가야 열매가 크고 익듯 영도 온전히 크고 성장합니다.
행해야 희망이 생겨 그 힘으로 혼자라도 환난도 핍박도 억울한 말도 담대히 이깁니다.
또, 자기 마음이 다이아몬드가 되면 다 이깁니다. 마음만 온전하고 굳건하면 혼자 있어도 사탄도, 악도, 세상 누구도 다 이깁니다.
마음이 이리 삶을 좌우합니다. 자기 마음으로 자기에게 속한 천하를 다스리는 것입니다.천국에 가도록 마음을 굳세게 하고 살면 천국에 갑니다.
하나님을 안 믿는 자는 마음이 하나님을 싫어하니 평생 하나님을 믿지 않는 것이 아닙니까. 그만큼 마음이 엄청난 것을 좌우합니다.
굳건한 마음으로 불의, 악, 사탄을 이겨야 합니다. 온전한 마음을 가지고 사탄도 다스리고 악도 다스리는 것입니다.

안된다, 못한다는 마음이 들 때는 과거 행한 것을 생각하기입니다. 그것을 거울삼아야 합니다. 여건이 어려웠는데도 행한 것을 인식해야 합니다.
자기 능력은 과거에 행했을 때보다 현재가 더 큽니다. 그러니 낙심하지 말고 말씀대로 뜻을 좇아 행해야 합니다. 주 안에서 개성대로 해야 합니다.
모두 지금껏 하나님 안에서 행해 왔습니다. 그 행한 능력이 여러분의 재산이요, 기쁨과 희망입니다. 그 터전 위에 행하면 쉽습니다.과거에는 더 험난한 길을 지나왔습니다.
하나님 말씀으로 배우고 겪은 기술로 끝까지 가다 보면 주 안의 길이니 정녕코 이상세계가 옵니다. 하나님 안에서 행한 일이므로 영영합니다. 실체로 이루어집니다. 다만, 때에 따라 다른 방법으로 이뤄지기도 합니다.
주와 행해야 두 겹줄이 되어서
끊어지지 않습니다.
다윗이 사울에게 쫓겨 다닐 때 하나님은 각양으로 여기저기에 예비한 복을 주셨습니다.
▶ 참고 성구 : 사무엘상 19~30장
어느 때는 안되는 것이 하나님 뜻이 아니라거기서 옮기게 하려고 안되게 하신 것이었습니다.
육적으로 하나님 뜻대로 한다고 생각하고 했던 일이 안 되고, 하나님은 순서 있게 행하십니다.
먼저는 신령한 것, 다음에 육 있는 자들의 것을 하십니다.
(마 6:33)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하나님이 약속한 것을 행해 주셔도 성령으로 인식의 눈과 마음의 눈을 뜨지 못하면 보아도 모릅니다.
인식의 눈과 마음의 눈을 뜨고 깨달아야,그때서야 육의 눈으로 보았을 때 제대로 인식합니다. 인식의 눈과 마음의 눈을 떠야제대로 온전히 보고 압니다.
제대로 인식이 안 되면 성령이 같이 행해 주시어 잘했는데도 자기가 해서 이 정도로 마음에 차지 않게 했다고 자기 혼자 생각합니다. 성령과 했기에 성령이 만족한다고 하시는데도 인식의 눈과 마음의 눈이 닫혀 있으면 자책합니다.
자기 인식의 눈이 뜨이지 않아 마음의 눈도 뜨지 못하고 제대로 깨닫지 못하면 하나님이 하신 일이라 하나님이 만족하셨어도 자기는 “이상하다. 만족스럽지 못하다.” 합니다.
무지로 그러합니다. 인식이 이같이 큽니다.인식으로 인하여 인식의 소경이 만들어집니다.
인식의 눈이 떠지지 않으면 좋은 보화를 보아도, 작품을 보아도 자기 인식대로만 보입니다. 최고 수석 작품과 나무 작품을 보아도 인식의 눈을 못 뜨면 보통으로 봅니다.
귀한 자도 자기가 보고 발견하는 것입니다.인식의 눈과 마음의 눈을 뜨지 못하면 천하에 귀한 자가 옆에 있어도, 그와 같이 살아도 보통으로 보입니다.

비교하면 인식의 눈이 떠집니다. 어떤 존재물을 다른 존재물과 비교해서 보면 바로 분별이 됩니다.
우리가 판단해야 하는데 분별을 못 할 때 여러 가지 방법이 있는데, 지혜로운 방법 중 하나가 비교해서 보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사랑하는 자에게는 분별과 인식의 눈을 뜨게 하시고,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고 싫어하는 자에게는 인식의 눈과 마음의 눈을 닫게 하십니다.
하나님과 주를 거역하는 자들은 자기 스스로 인식의 눈이 어둠으로 돌아가 자기가 좋아 좇던 것도 얻지 못하게 하십니다.
하나님은 악인들과 불의한 자들이 사망에 살게 시대 인식의 눈을 뜨지 못하게 하십니다. 회개해야 인식의 눈이 떠집니다.
어느 시대나 하나님은 시대 사명자를 미워하는 자들에게 인식의 눈이 떠지지 않게 하시고, 마음의 눈이 소경 되게 하셨습니다.
오직 그의 생명과 지혜의 말씀만이 시대 인식의 눈을 뜨게 합니다. 그가 담당한 모든 것들이 인식의 눈을 뜨게 합니다.
이와 같이 하나님은 ‘인식’으로 다스리십니다. 하나님의 축복은 ‘인식의 눈을 뜨게 해 주는 것’입니다. 이는 소경이 눈을 뜨는 격입니다.

성경 본문대로 마음의 눈이 밝게 하심으로 축복해 주십니다.
(엡 1:17~19)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하나님, 영광의 아버지께서 지혜와 계시의 정신을 너희에게 주사 하나님을 알게 하시고
너희 마음눈을 밝히사 그의 부르심의 소망이 무엇이며 성도 안에서 그 기업의 영광의 풍성이 무엇이며
그의 힘의 강력으로 역사하심을 따라 믿는 우리에게 베푸신 능력의 지극히 크심이 어떤 것을 너희로 알게 하시기를 구하노라”
예수님 때 자기 중심의 인식관을 가진 자들은구원주 예수님이 오셨는데도 불신했습니다.
구약 모세 때도 백성들이 인식을 잘못하고 모세를 대했습니다. 고로 400년간 기다리던 이상세계 역사가 깨지고, 그 이상세계는 자녀들에게 돌아갔습니다.
신약 기성은 늙어서 정신과 생각이 걸레처럼 낡아 버렸습니다. 올바른 성경 해석 인식의 눈을 못 뜨니 2000년 동안 그 자손들까지 선조들의 무지한 주장을 계속합니다.
시대 말씀으로 재생해야 합니다. 육의 모양은 재생이 안 되어도 정신, 마음, 생각은 변화되고 부활되어 재생됩니다. 새것과 헌것은 같이 못 있습니다. 새것과 헌것은 쪼개서 해야 합니다.
인식과 마음의 눈과 귀요, 깨달음의 눈과 귀입니다. 인식과 깨달음을 확실하게 해 주려고 행하여 겪게 하시고, 현실에서 사물과 만물을 보이며 이와 같이 이러하다.” 계시하십니다.
이 또한 인식의 눈을 떠야 하나님도 성령님도 주도 만물이나 사람이나 말씀을 통해 계시하심을 알게 됩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뜻을 확실히 알게 됩니다.
잘못되고 무지한 인식이 아주 몸에 배어 체질이 되면 하나의 불구자와 같습니다. 정신, 마음, 생각이 옳지 못한 것에 중독된 자도 그러합니다. 고로 매일 하나님 가르침을 관심 가지고 배워야 합니다.
먼저 인식의 눈, 마음의 눈을 온전히 뜨기입니다. 무엇이든 “안 된다.” 인식하면 하면 잘되는데도 그렇게 마음이 굳어져 행하지를 않습니다.
운동할 때는 먼저 몸을 그 운동 체질로 만들고 하면 그 운동을 잘하게 됩니다.
이와 같이 먼저 인식의 눈과 생각, 마음의 눈을 정상적으로 뜨고서 행해야 합니다.그래야 갈 길을 가게 되고, 행할 것을 행해 얻습니다.
인식의 눈을 뜨지 않으면 인식의 눈을 뜬 자가 자기 앞에서 금덩이 같은 것을 계속 얻어가도 모릅니다. 그리고서 저자는 좀 미쳤다고 말합니다. 어리석은 자입니다. 고로 배우고, 인식의 눈, 마음의 눈을 뜨고 살아야 합니다.
새 시대 인식의 눈을 뜨려면, 구시대 족속과 구시대 주관권을 벗어나야 합니다. 또 겪으면서 연구해야 하고, 인식에 갇히지 않은 자가 말해 줘야 합니다.
항상 자기가 인식의 눈을 못 떴을 때 손해가 갔고, 항상 인식의 눈을 떴을 때 일하는 대로 그 대가를 받았습니다. 이를 모르는 자에게 말해 주고 가르쳐 줘야 합니다. 인식을 잘못하면 사기 당하고, 확인하면 안 당합니다.

이 시대도 그러합니다. 기성의 박사들, 목사들, 지도자들이 인식의 눈이 멀고 마음 눈이 소경이라자기 인식대로 성경을 그릇되게 풀었습니다. 그릇되게 푼 것들을 기뻐하며 권위를 가지고 외쳤습니다.
그리고 소경들은 듣고 좋아 박수 치고 뛰며 살았습니다. 시대 말씀 앞에 부끄럽게 되었습니다. 특히 나이 먹은 기성들은 인식의 눈을 감고 더듬으며 살아갑니다.
자기 인식으로 인하여 부분적으로 알고 살면 하나님이 주시는 복과 기쁨을 다 못 받습니다.
부분적으로만 알면 하나님이 행하신 깊은 뜻을 모릅니다.
해(害)가 되는 그릇된 인식은 온전히 인식하는 것을 더 어렵게 합니다. 어떤 사람을 나쁘다고 그릇되게 인식한 자는 그 인식이 잘 바뀌지 않습니다.
유대인들은 당세와 후세까지 2000년 동안 예수님을 나쁜 자로 인식하고 삽니다. 인식을 잘못하면 마음 눈이 멀어 버립니다.
말씀을 듣고 모두 인식의 눈을 떠야 합니다.또한, 자기가 직접 생활하면서 겪고 인식의 눈을 떠야 합니다.
인식의 눈이 그릇되면 인식의 소경이 됩니다.해당하는 것을 못 봅니다. 부딪히고 다치고 해를 받아야, 그제야 ‘이것이 아닌가?’ 합니다. 인식을 잘못해서 손해 보는 자가 많습니다.
하나님, 성령, 성자, 주 앞에도 역시 그러합니다. 사도들 이후 초기 기독교인들은 인식을 잘못하고 예수님을 좋게만 대하려 하니, 예수님이 십자가를 진 후 육으로 3일 만에 살아나셨다고 했습니다.
그 잘못된 인식으로 인해 그 후손들이예수님이 영으로 다시 오셨을 때 못 맞았습니다. 자기들만 생각하지 말아야 합니다. 그로 인해 후손들도 소경이 되었습니다.
이같이 당장 현실만 생각하고 살면 안 됩니다. 우리가 살아가면서 당세, 순간, 현실만 생각하고 일하면 해 놓은 것도 시간이 가면 미래에는 묶여 버립니다.
확실히 모르면 계속 손해입니다.
확실히 알면 주신 하나님께 진정 감사하게 됩니다. 자기도 좋은 것 받았다고 알고 그렇게도 기뻐합니다.
인식의 눈, 마음의 눈을 올바로 뜨기입니다.
모두 형제들을 잘못 인식하면 안 되고, 하나님, 성령, 성자, 예수님, 선생에 대해서도 인식을 잘못하면 될 것도 안 됩니다. 오직 하나님의 말씀만 믿고 연구해야 합니다. 그러면 온전히 눈을 떠서 보게 됩니다.

2025년 마무리하는 기도~14
새것과 헌것은 쪼개서 해야 한다.
천 년 동안 새 시대에 속하여 행하는 자마다 이루게 되는 하나님 역사이다. 그에 맞는 뜻을 행하며 자기 때가 될 때까지 커야 한다.
마음과 능력은 다르다. 고로 잘하는 자에게 맡긴다.
하나님과 성령과 주와 일체 돼야 큰일을 하고, 큰 산을 옮긴다. 매일 굳건한 믿음과 기도와 실천이다. 끝까지 하기다.
환난을 통해 마음을 굳건히 연단하여 능력자가 되어 행하기다.
하나님은 사랑하는 자에게는 분별과 인식의 눈을 뜨게 하시고,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고 싫어하는 자에게는 인식의 눈과 마음의 눈을 닫게 하시니 회개해야 인식의 눈이 떠진다.
하나님의 축복은 ‘인식의 눈을 뜨게 해 주는 것’이다. 이는 소경이 눈을 뜨는 격이다.
시대 말씀으로 재생하게 하시고, 인식을 잘못하면 사기 당하고, 확인 안하면 당하고 손해가 가니, 항상 인식의 눈을 잘 뜨고 잘 행하게 하소서.
인식을 잘못해서 손해 보는 자가 많으니
확실하게 배우게 하소서. 확실히 모르면 계속 손해입니다.
인식의 눈, 마음의 눈을 올바로 뜨고 행하기를 간절히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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