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사야 64장 8절> “그러나 여호와여 주는 우리 아버지시니이다 우리는 진흙이요 주는 토기장이시니 우리는 다 주의 손으로 지으신 것이라”
<로마서 9장 21절> “토기장이가 진흙 한 덩이로 하나는 귀히 쓸 그릇을, 하나는 천히 쓸 그릇을 만드는 권이 없느냐”
<디모데후서 2장 20~21절> “큰 집에는 금과 은의 그릇이 있을뿐 아니요 나무와 질그릇도 있어 귀히 쓰는 것도 있고 천히 쓰는 것도 있나니 그러므로 누구든지 이런 것에서 자기를 깨끗하게 하면 귀히 쓰는 그릇이 되어 거룩하고 주인의 쓰심에 합당하며 모든 선한 일에 예비함이 되리라”
사람은 타고난 데서
만들기입니다.
어떻게 만들고 개발하느냐에
따라 좌우됩니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만들어야 합니다.

마음에서부터 싸움을 포기하면 이길 것도 패합니다. 악인들은 선과 싸울 때 두려워하면서 싸웁니다. 의인을 보호하시는 하나님이 언제 나타나 자기들을 멸하실지 모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심판 전에 악인들이나 우상을 섬기는 자들을 한 곳에 모두 모이게 하십니다. 그리고 전쟁이나 홍수, 지진, 태풍 등이 와서 일순간에 그들을 강력하게 뒤집어 놓습니다.
하나님은 “내가 창조한 땅에서 불의를 행하고도 회개하지 않는다면, 악이 선을 잡아 삼키니 그대로 두지 않고 악을 불살라 재가 바람에 날리게 하리라.” 하셨습니다.
의인들이 가는 길은 여러 길이나, 악인들의 가는 길은 사망길 하나입니다. 자기 행위가 자기 길로 가게 합니다.
의인들이 가는 길은 좁으나, 악인들이 가는 길은 넓어서 그 길로 가는 자가 많습니다.
(마 7:13~14)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 멸망으로 인도하는 문은 크고 그 길이 넓어 그리로 들어가는 자가 많고 생명으로 인도하는 문은 좁고 길이 협착하여 찾는 이가 적음이니라”
의인은 그 행위대로 매일 잔치합니다. 반면 악인은, 그들에게서 악이 떠나지 않으니, 의인들의 행하는 잔치를 보고 거짓으로 꾸며 잔치할 뿐입니다. 결국 그 행위대로 갈려 갑니다.
자기 행위의 열매를 먹고 사는 것입니다. 병들면 몸 안에서 병이 병을 만들고 건강하면 몸 안에서 건강이 만들어집니다. 신앙의 병도 그러합니다.
자기를 온전하게 만들어야 온전하게 보입니다. 사람이 타고나기도 하지만, 행해서 자신을 온전하게 만드는 것입니다. 타고나는 것, 만드는 것, 이 두 가지입니다.

산에 소나무 수천 그루를 보았더니 어떤 소나무는 잎의 길이가 짧고 키도 작았습니다. 아예 그 종자로 타고났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잎이 긴 소나무도 화분에 옮겨서 모래 자갈 위에서 키우면 고생되어서 잎이 더 크지 않고 잎 길이가 짧아집니다. 고로 작품이 됩니다. 타고났어도 더 멋있게 소나무를 손질하고 가위질하여 만들면 더 아름답고 멋있게 됩니다. 사람도 그러합니다. 만들기 달렸습니다.
이같이 만물은 타고난 것 위에 만들고 노력하면 바뀝니다. 사람도 그러합니다. 사람도 타고난 것이 있고, 그 위에 노력하여 만드는 것이 있습니다.
타고난 종자여도, 고산 지역 암벽에서 자란 소나무는 환경, 토질에 의해 만들어지는 것이 큽니다. 그런데 같은 고산 지역 암벽 소나무라도 똑같은 위치인데 한 나무는 거죽이 철갑을 입어 거북이 등 같고, 한 나무는 낮은 지역의 소나무와 모양, 형상, 특징이 같습니다. 타고나야 합니다. 사람도 그러합니다.
이처럼 타고난 희귀한 돌이나 나무는 백에 하나, 천에 하나, 만, 십만, 천만 중에 하나입니다. 그것 역시 만들어야 작품이 됩니다. 만들 때 돌은 형상을 깎아서 만드니 비교적 쉽습니다. 나무는 크면서 10년, 20년 만들어야 하니 보다 어렵습니다.
하나님이 만드셔도 100년, 200년 키워야 월명동의 <신부솔>같이 뿌리가 크고 웅장합니다 . 하나님이 택하여 사명자를 보내시는 것도 보면 수천 년에 한 명 보냈습니다.
사람도 타고난 위에 개성으로 각각 귀히 만들면 개성의 왕이 됩니다.
희귀종 나무는, 각각 다르지만 보통 나무보다 10배, 100배, 1000배 비쌉니다. 천 배, 만 배 가치 있고 귀합니다.
그 귀한 나무도 아는 자를 통해 배우지 않으면 그렇게 귀한지 전혀 모르고 그저 “이 나무 신기하다.”라고만 합니다.
배우고 아는 자가 주인 되어 보화를 얻습니다. 하나님도 아는 자가 귀히 여기고 가꾸고 보호하니 그에게 조건 세우게 하시어 그에게 주십니다.
배우지 않아 볼 줄 모르면 천하의 보물도 보통으로 보고 대합니다. 땅, 건물, 환경, 존재물, 사람도 그러합니다.
월명동을 귀히 볼 줄 몰랐을 때는 너무 월명동에 살기 싫었습니다. 그 후에 하나님을 믿고 섬기며 월명동에 눈이 떠져서 얼마나 귀한지 그 가치를 알게 되었습니다. 만사가 그러합니다.

전능하신 존재자 하나님에 대해서도 눈을 떠서 알아야 합니다. 그래야 만사의 모든 것, 그가 창조하신 것을 귀히 보고 깨닫고 알게 됩니다. 그를 알아야 그가 창조하고 만드신 것을 알게 됩니다. 배우고 아는 것이 능력이요, 권세입니다. 귀한 것을 알고 찾아야 주인이 됩니다. 특히, 자기 자신이 얼마나 귀한지 알아야 합니다.
인생들 자기 스스로는 아무리 배우고 알아도 자기 차원에서만 알고 삽니다. 전능자께 배우고 알고, 주께 배우고 알아야 영적 차원만큼 알게 됩니다. 인생은 스스로 평생 배워도 하나님께 하루 배운 것만 못합니다.
하나님, 주께 영의 세계를 배워야 영원무궁한 것을 배웁니다. 영의 것을 모르면 동물 차원같이 육에서 끝납니다. 그 영은 사망의 영이 되어 살게 되니 하나님과 교통하지 못해 죽은 격이 됩니다.
육신이 아무리 잘살고 자기가 원한 것을 하여도 전능하신 하나님을 보낸 자를 통해 믿지 않고 죽으면 육신의 삶이 오히려 죄가 되어 영이 영원히 그 형벌을 받습니다. 아무리 육으로 누리고 잘 먹고 잘살았어도 영이 구원을 못 받고 흑암으로 가면 세상의 부귀영화가 아무것도 생각나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사람에게 무엇을 목적하시고 어떻게 창조하셨는지 알아야 합니다.
농부가 농사지을 때는 다 잘되기를 바라며 퇴비 주고 수고합니다. 과일 농사도, 그 어떤 농사도 다 그리합니다. 그런데 열매가 크다 떨어지거나 안 크면 버립니다. 그러면 그것으로 끝납니다. 이 무서운 운명의 법칙, 이치를 깨닫고 자기가 자기를 지켜 행해야 합니다.
누구나 자기를 하나님 말씀으로 온전히 만들면 온전히 만들어집니다. 그런데도 이를 안 하면 영이 사망에 묻힙니다. 인생 농사는 단 한 번뿐입니다.
인생 일생은 구원을 위해 태어났습니다. 그런데 이 구원을 못 받으면 세상에서 그 어떤 일을 하고 부귀영화를 누려도 소용이 없습니다. 오히려 후에는 그것으로 영과 혼이 괴로워하며 영원히 고통받습니다.
육이 고생돼도 구원길을 가야 합니다. 그러면 그 행한 대로 영이 영의 세계에 가서 영원히 누리며 삽니다. 육신이 죽어도 영이 사망에 가지 않고 영원히 삽니다. 선하게 살았으면 선하게 행한 대로 선의 나라, 하나님 세계에서 영원히 삽니다. 고로 육신이 하나님 말씀대로 행하여 구원받고, 그 삶을 살아야 합니다.
육신 평생 하나님 전능자를 섬기는 것을 낙으로 삼고 살아야 합니다. 그것이 인생 영원히 성공한 삶입니다. 이것이야말로 최고 영광입니다.
영의 세계, 영원한 지옥과 천국을 가르쳐 줬으니 이제 영을 위해 살아야 합니다.

세상은 연구하고 또 하여도 세상입니다. 동물 연구를 천 년간 해도 동물입니다. 그렇다면 무엇을 배우고 연구해야 영원한 세계를 얻겠습니까? 하나님과 자기를 구원하러 온 자를 배우고 연구해야 합니다. 그와 일체 되어 살아야 합니다.
제대로 모르고 살면 가다 뒤돌아보고 생각이 흔들립니다. 고로 제대로 확실히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께 속하지 않은 것은 연구해도 사망입니다. 많은 자들이 개와 각종 동물만 연구하고 사랑하면서 동물에게 사랑받고 신기해하고 좋아하며 동물과만 살아갑니다. 전능자를 연구하고 알고 일체 되어 살아가야 합니다. 하는 자만 얻고 누리므로 왜 전능자를 연구하라고 했는지 압니다.
인생은 한번 살고 나면 복직이 없습니다. 다시 태어나 살지 못합니다.
(히 9:27) “한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하신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
‘다시 윤회한다.’,‘육이 부활한다.’ 하는 것은 이는 하나님 진리가 아닙니다.
사탄과 무지자의 이론을 믿으면 그를 따라 사망으로 갑니다. 사기 당한 삶입니다. 때가 되면 거짓과 무지 이론은 다 드러나고 망합니다.
오직 주 하나님, 성령, 성자만이 유일신이시며, 예수님은 하나님이 보낸 메시아이십니다.

하나님과 주의 복음이 시작되지 않은 때는 자기 양심이 법이 되게 하셨습니다. 양심으로 선과 악이 좌우됐습니다.
(롬 2:14~15) “율법 없는 이방인이 본성으로 율법의 일을 행할 때는 이 사람은 율법이 없어도 자기가 자기에게 율법이 되나니 이런 이들은 그 양심이 증거가 되어 그 생각들이 서로 혹은 송사하며 혹은 변명하여 그 마음에 새긴 율법의 행위를 나타내느니라”
선과 악입니다. 악하게 살면 악인이 되고, 선하게 살면 선인이 됩니다. 선하게 살면 선의 영들이 사는 선영계 쪽으로 가게 됩니다.
선의 영계에 가서 사는 것이 사망 지옥보다는 낫습니다. 천국에 못 가면 선의 영계라도 가는 것이 낫습니다. 그런데 이왕이면 아예 세상에서 살 때 전능자 유일신 하나님을 그 시대 사명자를 통해 믿고 살아야 합니다. 아예 이 세상에서 황금천국의 삶을 살아야 합니다.
그냥 살면 확인하나 마나 선영계 아니면 지옥, 흑암 쪽으로 갑니다. 만드는 대로 됩니다. 아예 황금천국에 가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세상에서의 삶으로 모두 결정됩니다. 고로 세상에서 살 때 새 시대 보낸 자를 맞고 사는 삶, 더 차원 높은 삶을 살아야 합니다. 옛것은 옛 차원의 삶입니다.
항상 하나님이 땅에서 시작하시는 그 시대를 좇아서 살아야 합니다. 새 시대를 맞고 살기 전까지는 옛 시대의 삶입니다. 옛 시대가 가고 하나님이 보낸 자를 통해 새 시대가 오면 새 시대에 와서 하나님이 보낸 자를 따르고 좇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새 시대를 좇아야 합니다! 새 시대를 좇아야 하나님이 구시대에서 해 주신 약속을 이루고, 약속해 주신 축복도 다 받습니다.
샘구멍에서만 샘물이 나듯이 보낸 자에게서만 하나님의 새 시대 근본의 말씀이 나옵니다. 보낸 자를 통해 알려 주셔도 못 하면 하나님도 그를 어찌할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은 시간 따라, 때를 따라 가십니다.
하면 되고, 안 하면 작은 개미가 한 만큼도 안 됩니다. 주 안에서 하는 만큼 됩니다.
월명동을 보세요. 하나님과 함께 오래 하니 불가능한 큰 것도 하였습니다.

악인은 자기가 스스로 멸망길로 가서 망하는 것입니다. 의인은 저마다 스스로 의를 행하면서 생명길로 가서 승리하고, 하나님 주관권에서 살아갑니다.
산골짝 입구를 막아 놓으면 장마 지고 큰비가 왔을 때 흙은 결국 나무들이 흡수합니다. 그 나머지 물만 흘러 내려와 막은 곳에 고입니다. 하나님은 이를 보시고 “명철하라. 총명하라.” 하십니다. 이는 “청명한 날의 하늘같이 맑다.” 함입니다. 흙이 섞여 오염되거나 더러워도 물은 청명합니다.
못해도 운명이니 그 할 일은 해야 합니다. 못한다고만 하지 말고 그래도 해야 합니다. 그래야 하는 만큼 얻습니다.
경기하는 자도 그 경기에서 직감적으로 패할 줄 알면서도 끝까지 합니다. 그러하듯이 인생 삶도 패한다고 하여도 그 삶은 살아야 합니다. 행해야 합니다. 행한 대로 받기 때문입니다.
작은 일은 하면 됩니다. 그러나 큰일은 하여도 잘 안 됩니다. 오래 걸리고 잘 되지도 않습니다. 그 대신 어려워도 큰일을 해 놓으면 작은 일 천 개 한 것보다도 더 낫습니다.
연단하고 실천에 길을 들이고 습관을 들여야 합니다. 그리하여 유능한 전문가가 되어야 합니다. 모두 할 때 같이 해야 쉽게 해집니다.
어떤 자는 자기 혼자 하는 것에 자신을 길들여서 혼자도 잘 하는 자도 있습니다. 저마다 습관을 길들이고 기술을 배운 대로 합니다. 무엇이든지 어떻게든 행하기만 하면 얻으니 해야 합니다.
오직 하나님의 말씀으로,
하나님 주관으로만
자기를 만들어야 합니다.

세상 모든 만물에는 때가 있고, 이치가 있습니다.
곡식의 때가 되면 거죽과 알곡이 갈라지듯이, 사람도 때가 되면 육신과 영혼이 갈립니다.
육신은 거죽입니다.
세상에서 잠깐 머물다 사라지는 껍데기와 같습니다. 그러나 영혼은 알곡입니다.
영원한 생명을 품고, 하늘 곡간에 들여질 진짜 열매입니다.
우리는 지금 무엇을 키우며 살아가고 있습니까?
무성한 잎과 굵은 대로 사람들의 눈을 끌며 살아가고 있습니까?
아니면 겉으로는 초라해 보여도 속 알맹이,
곧 영혼의 알곡을 키워가고 있습니까?
세상에서는 육신이 먼저 보입니다.
잎이 크고, 가지가 뻗고, 사람의 외모와 성공, 겉모습이 앞섭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속을 보십니다.
영혼이 자라고 있는가, 진리 위에 서 있는가,
하늘의 열매를 맺고 있는가를 보십니다.
곡식은 잎이 자라고, 대가 굵어질 때가 있습니다.
하지만 열매는 가을에 자랍니다.
그때 맞는 양분을 주어야 진짜 열매가 자랍니다.
인생에도 영혼의 계절이 있습니다.
그때를 놓치지 말아야 합니다.
영혼을 위해 심고, 영혼을 위해 살아야 합니다.
성경은 말씀합니다
“자기의 육체를 위하여 심는 자는 육체로부터 썩어질 것을 거두고,
성령을 위하여 심는 자는 성령으로부터 영생을 거두리라” (갈 6:8)
잎은 시들어도 알곡은 남습니다.
육신은 흙으로 돌아가도, 영혼은 하늘로 돌아갑니다.
그러니 지금 이 순간, 육신만을 위한 삶에서 돌이켜 영혼을 위한 삶을 선택해보세요
육신을 위한 삶은 결국 쭉정이 인생이고
영혼을 위한 삶은 곡간에 들이는 알곡 인생입니다.
오늘, 당신은 무엇을 심고 계십니까?
이제는 알곡을 키우는 삶을 선택하기를 바랍니다. 영원한 생명의 열매를 맺는 인생이 되도록 말입니다.
오늘도 하나님과 함께 행복한 하루 되시길 기도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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